• 김경숙의 NP일기
  • 내게 별을 따다 주겠다는 그녀의 이야기

  • 내게 별을 따다 주겠다는 그녀의 이야기

     

     

     

    김여진 간호사는 2011년에 내가 English for Healthcare Professionals를 출판하고 한국에 가서 미국 간호사에 대해 강의를 할 때, 그야말로 정성껏 메모를 하며 내 강의를 경청하던 간호사였다. 그녀는 그때의 메모를 10년 넘게 간직하고 있다가 마침내 나와 뉴욕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만났을 때 그 메모를 가지고 나왔다.내가 그녀의 메모장을 훑어보니 내가 11년 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가 다 기억이 났다.

     

    세상에, 이런 것을 다 가지고 있다니….나는 놀라기도 했지만, 그녀가 미국 간호사가 되는 데 그토록 열정적이었다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넘어 가슴이 찡해지는 감동이 밀려왔다. 그녀는 여기까지 오는 데 장장 11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했는데, 나는 속으로 ‘나 같으면 포기했을 텐데,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장구한 세월을 어떻게 포기하지 않았어요? 대단하군요.”“포기하려고 할 때마다 길이 보여서요. 이것은 미국에 가라는 신호로 받아들였어요.”

     

    나는 뉴욕에 오기까지 11년이 걸린 것을 해낸 당신은 이제 미국에서도 적응을 문제없이 할 것이고, 무엇을 해도 성공할 것이니 염려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녀가 간호사로 일을 시작하고 2~3개월이 지난 후,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일해 보니까 어때? 내가 그때 미국 간호사에 대해서 말한 것 중에 뻥 친 것 하나도 없지요? 내 말이 다 맞았지?”그러자 그녀는 그렇다며 너무 만족한다고 했다.

     

    그녀는 에이전시를 통해 온 병원의 1년 계약 기간을 내 예상대로 무사히 잘 마치고, 뉴욕에서도 손꼽히는 유수의 사립병원으로 당당하게 자리를 옮겼다.그녀가 병원을 옮겨야 하나, 그냥 있어야 하나 고민할 때 나는 “지금 옮기지 않으면 나중에 옮기기 힘드니 옮길 수 있으면 옮기라”고 했다.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으니까.

     

    이전 에이전시가 연결해 준 병원보다 훨씬 더 좋은 병원으로의 취업이 확정되었을 때, 나는 그녀가 정말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그녀에게는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조용히 있다가 매니저에게만 한 달 전에 말하라고 조언했다.

     

    내가 간호사를 하면서 참으로 싫었던 것이 뒷담화를 하는 동료들이었다. 간호사 동료들 중 몇 명은 왜 그렇게 남이 뭘 하는지 알고 싶어 하는지, 특히 누가 공부라도 한다 치면 몹시 시샘하며 왜 하느냐고 집요하게 캐묻곤 했다.자기는 하기 싫으면서 남이 하는 꼴도 못 봐주겠다는 심보를 가진 사람들이 여럿이었다.

     

    아마도 영어도 모국어가 아닌 내가 BSN을 마치고 또 석사를 공부한다는 것이 몹시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혹시 내가 학위라도 따서 자기들 매니저가 될까 봐 겁이 났던 것 같다. 하도 “학위 따서 뭐 하려느냐”고 묻길래, 나는 매니저 자리에 전혀 관심 없다고 확실히 말했다.자기네는 영어에 문제가 없으니 공부하면 나보다 훨씬 쉽게 잘할 텐데 왜 그럴까 싶었다.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며 인생을 낭비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매니저가 한 번은 나를 불러 매니저를 해 보지 않겠느냐고 권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내 성격은 너무 말랑말랑했고, 퇴근 후에도 스태프들이 일이 있으면 전화를 해 오며, 컬럼비아는 감사도 잦아 매니저가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커 보였다.또 스태프 간호사는 오래 근무해도 매니저는 노조 소속이 아니라 병원에서 자르면 그대로 나가는 것을 여러 번 보았기에 그런 자리에는 미련이 없었다.

     

    또 다른 한국 간호사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먼저 일하던 곳에서 컬럼비아로 옮긴다고 하자 같이 일하던 한국 간호사가 “네가 그런 크고 좋은 병원에 어떻게 가서 일하겠느냐, 주제 파악하고 가지 말라”며 화를 냈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해 나를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다.나는 그녀에게 “그 사람도 우리 병원에 오고 싶은데 자기는 못 오니까 심술이 난 거야. 신경 쓰지 마”라고 말해 주었다.

     

    나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어, 잘됐다. 축하해요. 나도 그 병원으로 옮기고 싶으니까 자리 나면 나도 소개 좀 해 줘.”이렇게 했으면 그 심술 난 간호사도 컬럼비아로 옮기는 데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었을 텐데. 간호사 자리는 늘 나기 마련이고, 나에게도 매니저가 친구 좀 데려오라고 여러 번 했으니까.

     

    병원 입장에서도 전혀 모르는 사람보다는, 멀쩡하게 일 잘하고 말썽도 안 피우는 직원이 데려오는 사람을 더 신뢰하는 것 같았다.

     

    우리 병원에 들어오기 위해 10년 넘게 노력했다는 미국 간호사들도 여러 번 만났다. 그들은 현재 병원에 만족하지 못해 간호사 잡지를 여러 권 뒤적이며 어느 병원으로 옮길지 고민하다가 컬럼비아로 옮긴 뒤에는 그런 생각을 접었다고 했다.필기시험 같은 것은 없고 인터뷰만 보는데, 그렇게 쉽게 뽑아 주지 않는다고 들었다. 나는 영어도 그리 유창하지 않았지만 이미 여기서 일하던 친구의 소개로 비교적 쉽게 들어왔다.나중에 컬럼비아가 들어오기 힘든 병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나를 뽑아 준 매니저와 소개해 준 친구에게 지금까지도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이런 이유로 나는 그녀에게 끝까지 함구하라고 했고, 나오기 2주 전에 동료들에게 알리라고 권했다.

     

    그녀는 뉴욕 중심부인 맨해튼에 소재한 병원으로 옮겼는데, 병원과 시설,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하다며 흡족해했다.내 말을 듣고 미국 간호사가 되겠다고 11년이 넘는 세월을 투자해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태평양을 건너온 그녀가 이렇게 잘 적응하고 미국 생활에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니, 나 역시 그녀가 참으로 대견하고 기특했다.

     

    그녀가 뉴욕에 온 지 몇 달 만에 한국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온 카카오톡 메시지.

     

    “선생님, 한국에서 필요한 물건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어떻게 해서든지 구해 오겠습니다.”

     

    이 말투가 어찌나 비장한지, 마치 옛날 이야기책에서 효자·효녀가 부모의 불치병을 고칠 명약을 구하러 나설 때 쓰는 표현처럼 들렸다.나는 고맙고도 놀라워서 ‘아이고, 이 사람, 내게 별이라도 따다 줄 기세네’ 하고 웃었는데, 그녀의 대답은 나를 더욱 감동시켰다.

     

    “선생님, 할 수만 있으면 별이라도 따다 드리겠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선생님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요.”

     

    우리가 이런 대화를 나눈 후, 나는 친구들에게 “나한테 별 따다 주겠다는 사람이 있어” 하며 여기저기 자랑하느라 바빴고, 그녀가 좋은 병원으로 옮긴 것을 기념해 우리 동네 일식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시켜 먹으며 그녀를 격려해 주었다.

     

    그녀는 병원으로 가는 길에 뉴욕의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이 너무도 아름다워 형언할 수 없을 정도라서 출퇴근길이 더욱 설레고 기쁘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일이 한국에서 간호사로 일할 때보다 반의 반도 안 되는데, 일을 너무 잘한다고 칭찬을 많이 받아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도 했다.

     


     

    친애하는 김여진 간호사에게,

    내 말을 듣고 온 가족이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10년 세월을 버티며 태평양을 건너온 용감한 그대.미국에서의 경력과 학업을 통해 원하는 모든 것을 성취하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게 해 주어 고마워요.그대는 나의 기쁨이자 자랑입니다.

     


     

    미국 간호사를 생각하시는 분들께,

    제가 40년 전 도미를 생각했을 때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때 이미 간호사로 미국에 가는 길은 막혀 있다고들 했지만, 정책이라는 것은 언제든 변하니 일단 준비는 해 두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미국에 간호사로 오려면 CGFNS라는, 간호사계의 사법고시 같은 시험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제가 응시했을 때는 120명이 시험을 봤는데 합격자는 6명뿐이었습니다.시험은 영어와 간호학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첫 시험에서는 간호학은 합격하고 영어는 불합격이었습니다. 영어를 좀 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는데, 시험에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더군요.

     

    그래서 6개월 후 시험을 대비해 하루 8시간씩 단어만 외우며 공부했고, 두 번째 시험에서 영어에 합격해 미국에 올 수 있었습니다.이렇게 자세히 말씀드리는 이유는, 어려운 시험을 붙어 미국에 왔다고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미국에 간호사로 오는 길이 훨씬 수월해졌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요즘은 미국 본토에 오지 않아도 NCLEX를 칠 수 있으니까요.

     

    어떻게 하루 8시간씩 오로지 영어 단어만 공부할 수 있었는지, 지금 돌아봐도 참 신기합니다.

     

    인생에서 ‘해 볼까 말까’ 고민되는 일은 해 보는 것이 맞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제 한평생을 살아본 인생의 선배로서 그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세상에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으며, 어렵게 쟁취한 결과물일수록 성취감과 자부심, 그리고 자존감을 크게 높여 줍니다.

     

    여러분이 걱정하는 인종차별은 40년을 살면서 이민 초기 딱 한 번 겪었습니다. 은행에서 줄을 서 있는데, 나보다 덩치가 두 배 반은 되고 키도 180cm가 넘는 조폭 스타일의 백인 여성이 새치기를 했을 때였습니다.그때는 제가 20대여서 그 기세에 눌려 아무 말도 못 했고, 그때 한 번 ‘아, 이게 인종차별이구나’ 하고 느꼈을 뿐입니다. 이후로는 피부색 때문에 차별받는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또 총 맞아 죽을까 봐 무서워서 미국에 못 오겠다는 분들도 종종 계시는데, 40년 동안 살면서 총소리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제 입장에서는 그저 웃음이 날 뿐입니다.

     

    2026년 새해를 맞아 각오도 새롭게 하시고, 하고자 하시는 모든 일들을 이루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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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맙습니다

    26.02.15 11:55:42
  • 너무너무 멋지십니다..

    26.02.04 22:0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