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숙의 NP일기
  • 그녀와의 뜻밖의 해후

  • 매니저 닥터가 새로 온 한국인 NP들이 있으니 서로 인사를 하며 지내면 어떻냐 하여서 conference room으로 들어갔다. 가서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나니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매니저 닥터는 신참 NP들에게 뭐 모르는 게 있으면 내가 다 잘 알고 있으니까, 나한테  물어 보라고 신참들에게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들은 이제 입사하여 progress note 쓰는 것을 큰 부담으로 여기고 있었다.

     

    전산으로 처방 보내는 방법이라던가,

    전문의들한테 refer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환자가 병원 침대를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

    Blood works order는 어떻게 하나,

    home health aid 시간을 올려 달라고 하면?

     

    등등…. 모든 것이 처음이라 몹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나는 내 올챙이 시절을 떠 올리면서 최대한으로 신경을 써서 잘 가르쳐 주었고 그녀들의 배우려는 열의도 대단했다. 그녀들은 궁금한 게 너무 많았고 내가 언제 또 일을 하느냐고 자꾸 물었다.

     

    난 일주일에 이틀 밖에 일을 안 하니까 (그래도 하루는 progress note 써야 하고 환자들이 내게 보내는 메시지에 일일이 다 응답해야 하고 수시로 입력되는 검사 결과 다 리뷰하고 약도 고치고 환자들 위에서 전문의들에게 전화도 해야 하고 처방전도 약국으로 보내는 등, 일이 끊이지 않는다. 몸이 집에 있다는 것 외에는 아이패드를 문자 그대로 끼고 살아야 한다) 모르는 것은 디렉터 닥터가 사람이 좋으니까 불편해 말고 디렉터 닥터에게 물어보라 했는데도 그 분은 어려워서 싫다고 했다.

     

    Progress 노트 쓰는 일로 걱정이 태산인 그녀들에게 나도 처음 시작하고는 환자 4명 노트를 밤 11시까지 썼으니까 처음엔 다 그렇다고 위로를 해 주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명이 얼굴이 아주 낯이 익었다.

     

    “어디서 봤지, NP이면 nurse 일 텐데 어디서 봤지? Columbia에서 봤나?”

     

    Columbia에서는 투석 치료를 해 주느라 그 큰 병원을 다 돌아다니면서 근무를 했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어느 병원에서 근무해요?”

    “J hospital에서 일해요.”

    “그러면 컬럼비아 병원 간호사는 아닌데…. 어디서 봤지………….”

     

    그리고 그 신입 두 사람은 전화번호와 이름을 교환하는 메모들을 주고받는데 이름을 보니 분명히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녀는 내가 다시 만나고 싶은 상대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기 이민 초년병 시절 나와 알게 된 사람인데 같은 간호사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아주 잘해 주고 또 많은 편의를 봐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아주 무례하게 행동했고 또 큰 손해를 끼친 사람이었다. 별로 만나고 싶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이름이 매우 특이하여서 이름을 보자마자 난 단박에 그녀를 알아보았다.

     

    나는 알아보았지만, 그녀는 날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와의 만남은 15년쯤 전이었고 두세 달 정도 알고 지내던 인연인 데다 좋게 헤어진 것도 아니니까 그녀가 날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당연지사.

     

    그녀의 이름을 확인한 순간 그녀가 내가 행했던 모든 불유쾌한 행동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속으로 많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

     

    “M 씨, 나 김경숙이에요, 우리 전에 만난 적 있지요?”

    “어머나, 선생님, 맞아요. 잘 지내셨어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녀는 내게 했던 많은 그릇된 행동들이 본인도 생각이 났는지 몹시 당황해 하면서 쩔쩔맸다. 그리고 우리는 conference room에 더 머물면서 그녀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긴 했지만 나도 속이 영 편치 않았다.

     

    좌불안석으로 보이던 그녀가 시간이 좀 지난 후 내게 사과를 했다.

     

    “선생님, 그때는 제가 영어 시험도 봐야 하고 이민 초기라 너무 정신이 없었어요. 선생님께는 큰 잘못을 했다는 것을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깨달았고 계속 후회하고 반성하면서 살았어요. 정말 죄송해요.”

     

    “이제 내가 그때 M 씨한테 얼마나 잘해 주었는지 알겠지요. 아까 당신 이름 확인한 순간 나한테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지 그게 제일 먼저 생각 나더라고요.”

     

    난 솔직하게 대답을 했고 그녀의 사과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지난 일이니 다 잊읍시다. 괜찮아요.”라고 말을 해 주기에는 그녀가 내게 저지른 잘못이 너무 컸으니까.

     

    참 이상한 것은 그녀를 만나기 3일 전에 갑자기 그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던 데 “뜬금없이 이 사람 생각이 왜 나지? 잘살고 있겠지! “하고 그냥 넘어간 데 막상 그녀를 생각지도 않게 오피스에서 만나니 기분이 묘하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나는 내게 자꾸 물어봤지만 나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나 우리 아이들에게나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다.

     

    아무리 상대방이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절대 함부로 하지 말라고, 누가 언제 무엇이 되어 우리와 다시 만날지 모르니까 누구에게라도 공손하게 행동 하라고, 특히 우리 아이들에게 강조한다.

     

    M은 함부로 행동하고 다시 안 볼 것 같이 헤어진 나와 15년 후에 같은 직장에서 만날 줄 상상이나 했으랴? 그녀는 신참 나는 오피스에서 10년 경력의 최고참인 위치에서 나와의 만남이 M에게 얼마나 불편 했을 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하지만 NP들은 각자 따로 일하고 한국 사람들 끼 리라도 오피스에서 인사나 나누고 각자 일하기 바쁘니까 M 이 나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을 듯. NP로 일하면서 제일 큰 장점은 내 환자만 내가 책임지면 되는 것이고 동료 NP 들과 interaction 이 없으니까 부딪힐 일이 없는 것이다.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 하나

     

    간호사 A를 무척이나 힘들게 하고 들볶던 간호사 B가 있었다. A는 얼굴이 예쁘장하고 심성도 고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그녀의 상사였던 B는 그녀에게 함부로 대했다고 했다. 그 직장을 나와서 A는 사우디아라비아에 갔는데 어느 날 A의 후임으로 B가 들어왔단다. 서로를 알아보고는 둘 다 어색했지만 B는 위치가 바뀌어서 만난 A를 몹시 불편해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가 한 짓이 있는 데 이제 그 A 간호사가 B 가 일하는 데 책임 간호사가 되었고 그녀는 B 간호사 위에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만났다고 해도 병동이 다르면 상관이 없겠지만 공교롭게도 B는 A가 일하는 응급실로 배치를 받았으니 만나지 않으려 해도, 안 만날 수가 없는 상황.

     

    이 얘기를 아주 오래전 A에게 직접 들었는데 A는 과거의 일은 잊고 B에게 더 잘해 줬더니 B는 몹시 미안해하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단다. 나는 B 와 가끔 마주쳤는데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고 스트레스가 굉장히 많은 사람인가 보다고 내가 느끼기도 했다.

     

    A 가 이런 얘기를 했을 때는 나는 그 사람이 지금 얼마나 불편하겠냐 그냥 B에게 잘해 주시는 게 어떠냐고 했는데 내가 30년도 더 지나서 같은 입장이 되어보니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A가 참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번 일로 나는 인생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보냈고 다시 한번 내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에게라도 함부로 하지 말자.

    우리가 언제 무엇이 되어 누구와 다시 만날지 아무도 모른다.

     

     

     

    • 댓글작성하기

  • 그래서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지요.

    24.04.29 17:1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