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숙의 NP일기
  • 2022 봄날의 소고

  • 3월 말에 고대하던 A의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불합격. 병원에 100 군데 이상  레지던트 자리에 지원을 해도 인터뷰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들에 비해 그는 뉴욕에 있는 병원을 비롯해서 3번이나 인터뷰 기회를 얻었었다. 해서 나도 기대가 컸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와서 실망했지만 그는 괜찮다면서 내년에 다시 지원하겠다 했다.

     

    내가 공들여 써준 추천서는  날짜만 바꿔서 다시 주면 된다고 하기에 내년엔 우리과 디렉터 닥터 추천서도 같이 넣어보자고 하였다.

     

    내가 추천서를 써 줄 때는 디렉터 닥터와 같이 일을 하지 않을 때여서 추천서를 부탁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런 부탁을 해도 될 정도로 디렉터 닥터와 함께 일하니까 내가 제안을 하였다.

     

    그가 불합격 소식을 받은 날, 그와 똑같은 처지인 그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스패니쉬로 주고받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 친구는 합격했다고 흥분해서 전화를 한 것으로 보여졌다.

     

    그는 남미에서 의대를 졸업한 한국인 이민자라고 하기에 그 사람이 됐으면 당신도 될 확률이 있으니까  내년에 우리 꼭 다시 해 보자 하였다.

     

    A도 속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괜찮다고 하면서 감정을 별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얼마나 실망했을까 하는 마음에 난 참으로 안타까웠다.

     

     

    지난 2월엔 컬럼비아 병원 친구 캐티에게 토요일 오후 늦게 전화가 왔다.

     

    그녀는 일을 하면서 전화를 많이 받아서 집에 오면 전화를 거의 걸지 않는다 하고 정말 아주 급한 일 아니면  전화를 하지 않았 기에 난 약간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얼른 전화를 받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나보다 1년 반 정도 일찍  퇴직한 간호사 L 이 목요일에 아프다고 동네 병원에 입원했는데 곧 의식 불명이 되었고 중환자실로 옮겨져  intubation을 하고 난 후, 토요일 오전에 사망했다고 하였다.

     

    코로나에 걸렸냐 했더니 병원에서도  왜 이렇게 상태가 악화되고 금방 갔는지 모른다고 한다고 했다.

     

    아프면 그래도 나부터도 기를 쓰고 컬럼비아 병원으로 오는 데 컬럼비아로 옮길 시간조차 없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13살이나 많아서 seniority (입사 순서) 가 높았기에 여름휴가는 도맡아 놓고 가서 난 아이들이 어릴 때 그게 너무 부러웠었다.

     

    한 번은 친구가 한국에서 내가 오라 오라 하여서 여름에 오는 데 여름 8주 동안 5주나 되는 휴가 가 있는데도 한 주도 내 차례로 휴가가 오지 않았다.

     

    얼마나 약이 오르고 화가 나는지 매니저한테 하소연을 하는 데 눈물이 확 쏟아졌다.

     

    아무리 매니저라 해도 휴가 순서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내 얘기를 듣던 매니저는 L 이 마침 내가 가기를 원하는 주에 한 주를 취소했는데 그걸 가지라고 하여서 얼른 그러마라고 답했다.

     

    당시 우리 과에서 난 나이가 젤 어렸고 seniority는 꼴찌여서 휴가라고는 아무도 안 가는 애들 다 학교 가는 시간에만 차지가 되어서 그게 늘 불만이었는데 그것도 이제는 아득한 추억이 되어 버렸다.

     

    누가 휴가를 포기해도 그게 자동적으로 내게 오는 것은 아니고 또 공고를 하여서 부스러기처럼 떨어진 그 휴가도 seniority가 높은 사람 차지였다.

     

    민주주의가 너무 발달해서 그러나? 모든 것에 규칙이 공평하게 적용되었고 여름휴가라고는 정말 약에 쓰려고 해도 없는 내가 간호사 라운지에서 난 그 seniority 때문에 우리 애들이 대학생이나 되어야 여름휴가 차례가 올 것이라고 신경질을 크게 낸 적이 있었고 여러 명이 그 광경을 보았었다.

     

    그래서인지 매니저가 내게 하사한 (?) 그 금쪽같은 여름휴가를 내가 차지했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여름휴가가 내 차지가 되었을 때 난 그게 필요가 없으니까 어린애들이 있는 아기 엄마들에게 가지라고 하였더니 무척 고마워들 하였다.

     

    난 여름휴가를 원래 즐기지 않는다. 여름에 병원처럼 시원하고 쾌적한 데가 또 있을까?.......

     

    L은 신체적 조건으로 간호사를 벌써 그만둬야 하는 시기도 한참 넘겨 병원을 계속 다녔고 간호사 들은 내게 노골적으로 그만두라고 얘기할 사람 나밖에 없으니 나가라고 얘기하라고 나를 볶아 댔다.

     

    나도 같은 심정이었기에 큰맘 먹고 병원 연금이랑 정부에서 주는 사회보장 연금 합치면 일하는 것보다 훨씬 많을 테니 제발 힘들게 몸 끌면서 다니지 말라고 사석에서 간곡히 부탁하였지만 그녀는 예상대로 몹시 서운해하였다.

     

    내가 받는 연금으로 짐작건대 그녀는 나보다 정말 훨씬 더 받을 텐데 내 말을 듣지 않고 계속 다니면서 자기는 100 세까지 살 것이라 했다.

     

    100세까지 산다는 계획은 뭐라 할 수 없지만 누가 자기의 수명을 알 수 있을까? 100세는커녕 75세도 못 채운 그녀는 그렇게 허무하게 며칠 만에 가 버렸다.

     

    그야말로 평생 일만 하다 간 인생…… 아무리 좋은 병원이라 해도 몸이 좀 건강할 때 나와서 시간 구애도 받지 않고 하고 싶었던 일 좀 하다가 가지, 그 많은 죽을 때까지 주는 연금 2년도 못 받고 가 버렸으니….. 그녀는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 그만둬서 retirement party를 병원에서 크게 해 주었는데 내가 보기엔 사람이 진이 다 빠져있었다.

     

    아, 저 사람 얼마 못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스쳤는데 내 예감은 적중했고 나는 한동안 기분이 썩 좋지를 않았다.

     

    장례식이 한겨울 추운 때였고 얼마나 먼 저 안쪽 롱아일랜드인지, 우리 집에서도 한 시간이나 걸렸다. 사람들이 많이들 못 올 것 같아서 난 조의금 대신 엄청난 택시비를 지불하면서 나한테 30 년 동안 스케줄 한번 안 바꿔준 사람이지만 그래도 장례식에 다녀오니 홀가분하였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이 백번 옳은 것임을 나는 그녀의 죽음을 보면서 다시 실감하였다. 내가 그만둔다 할 때 모두들 뜻밖이라고 왜 나가느냐고들 하였고 의사들도 자기네들끼리 그 사람 몇 살인데 왜 벌써 나가느냐 말들이 무성했다고 했다.

     

     

    그때 나는 “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일찍 나갈랍니다” 하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언제나 그랬지만 난 요즘 내 인생이 얼마나 남았을까를 매일 생각하면서 산다.

     

    내 생명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고 그 끝은 어디인지 모르기에 더 내 삶을 후회 없이 더 열심히 살 생각을 한다 해야 하나? 나를 보면 무슨 일에든지 열정이 넘친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데 그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느냐고들 묻기도 한다.

     

     

    그냥 뭘 하든지 재미있고 즐겁게 하려고 해요…… 그리고 재미있는 게 주위에 참 많네요…..

     

     

    우리 동네는 벚꽃 구경을 따로 갈 필요가 없을 정도로 흐드러진 벚꽃으로 봄이 참으로 아름다운데 오늘따라 꽃들이 더 아름답게 보임은 연륜 탓이려니 생각해 본다. 몇 년이나 이 꽃들을 더 볼 수 있을까……

     

     

     

    ⓒ 무단전재, 변형, 무단 배포 금지

     

     

    • 댓글작성하기

  • 익명

    먼저 말할 수 있는 용기 본받고 싶네요! 가을 학기에도 꽃꽂이 하시고 올려주세요ㅎㅎ 항상 건강합시다 모두

    22.06.08 03:02:28
  • 익명님,니사님, 난생처음 해본 꽃꽂이솜씨를 칭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중국분 이셨는 데 백인들 앞에서 영어를 하시려니 불편 하셨는지 혹시 내 발음을 잘 못 알아들으면 미안하다고 하시기에 내가 과대표 처럼 손들고 일어났어요. 우리는 선생님께 꽃꽂이를 배우러 왔지 영어를 배우러 오지 않았습니다. 신경쓰지 마세요 하고 한마디 했더니 좋아 하시네요. 퇴직하시고 꽃꽂이가 좋아서 하신다기에 아무리 그래도 등록비가 너무 싸니까 다음학기에는 두배로 올리셔도 된다고 크라스메이트들 다 나간후에 말씀드렸어요. :):) 봄하고 가을에 두번 있다는 데 벌써부터 가을 학기 기다려지네요.

    22.06.07 10:41:23
  • 꽃꽂이 프로급이신것같아요.진짜 예쁘게 잘 하시네요~^-^

    22.06.07 01:54:10
  • 익명

    꽃꽂이 너무 예뻐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항상 즐겁게, 소중하게 하루를 보내볼게요. 응원합니다

    22.06.03 01:35:58
  • 너스케입 독자 여러분, 오랬만에 글을 올렸습니다. 글과 같이 올린 꽃꽂이는 요즘 새로 꽃꽂이를 배우고 있어서 클래스에서 선생님 따라서 해 본 작품입니다. 우리 애들이 다닌 고등학교에서 하는 데 오랫만에 청춘들이 다니는 학교에 들어갔더니 여기서 그 아름다운 젊은이들이 열심히 공부 하면서 각자의 인생을 설계 하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서 .참으로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오케스트라실, 강당 ,교실을 즐겁게 기웃 거렸는 데 아주 기분이 좋았습니다.아이들 학부형때는 이런 느낌이 없었는데 그때는 너무 바빴나봐요.

    22.04.13 08: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