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숙의 NP일기
  • 추천서 써주기

  • NP 가 되고 나니 취직을 하려고 하는데 추천서가 필요하니 써줄 수 있느냐는 청탁이 심심치 않게 들어온다.

     

    자기가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는 것은 누구에게든지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니까 난 그런 청탁이 들어오면 '이 사람의 장점이 무엇이었더라? 내가 이 사람 어디가 제일 맘에 들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고 성의를 다 해서 써 주었다.

     

     

    일단은 내가 내 고추장 영어로 쓰고 나면 버터 바른 영어를 쓰는, 영어 작문 실력이 뛰어난 우리 딸에게 교정을 받아서 주고는 하였다.

     

    우리 회사에서는 내 통역이랑 기타 일들을 도와주라고 영어, 스페인어가 유창한 assistant를 한 명 주는데, 말이 assistant지 본국에서 의대를 졸업한 사람들이고 졸업하고 그냥 미국에 온 사람도 있지만 본국에서 레지던트를 끝내고 전문의 시험만 보면 되는 실력파들도 있어서 나는 이 사람들을 의사로서 존중을 해주고, 일하다 내가 물어보기도 하고 내가 잘 아는 것은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

     

    미국에 와서 의사를 해보겠다는 푸른 꿈을 가득히 품은 그들을 보면 나도 간호사로서 미국에 와서 뭔가 해보겠다고 20대에 겁도 없이 혼자 태평양을 건넜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나는 그들에게 많이 잘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처음 갔을 때 만난 젤리사는 아주 총명하고 열정도 있고 일처리도 완벽하여서 내가 뭘 부탁을 하면 언제나 한 가지 대답만 하는 사람이었다.

     

    "I will take care of it.(내가 알아서 할게요.)"

     

    같이 좀 일을 해보니 나를 따라다니기엔 너무나 똑똑하고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나야 이런 사람하고 일하면 좋지만 여기 있지 말고 좋은데 나오면 찾아서 가라고 말을 해주기도 했다.

     

     

    그녀와 일을 한지 일 년이 지났을 때 병원에 좋은 자리가 났는데 옮기고 싶다고 추천서를 써달라 했다.흔쾌하게 그러라 했는데 병원에서 이메일로 내게 그녀에 관해서 여러 가지를 묻는 내용을 받은 날 당일 오후까지 대답을 해달라고 하여서 어이가 없었지만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혹시라도 내가 늦게 답을 보내면 안 되니까 나는 질문을 읽어보면서 성심껏 답을 써주었고 질문에 답하는 게 끝나니 그녀에 대해서 느끼는 대로 쓰라 했다.

     

    시간이 있으면 이럴 때도 우리 딸한테 내가 쓰고 고치라 할 텐데 시간이 없어서 너무 아쉬웠지만 무슨 말을 써줘야 저쪽에다 이 사람을 뽑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할까 고심을 하다 보니 그녀가 늘 내게 하던 말이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쳤다.

     

    '그래, 맞아, 그 말을 쓰는 거야. "I will take care of it."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한 번도 못 봤으니까, 좀 신선한 느낌을 주어야지…….'

     

     

    추천서를 대신한 이메일 답장을 끝내고 내가 뭐라고 했는지 궁금해할 그녀를 위해 사진을 한 장 찍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딱 한사람 뽑는 자리에 여러 명이 지원했는데, 그녀가 뽑혔다는 낭보가 들려왔다.

     

    추천서를 써줄 때 진부하고 틀에 박힌 추천서를 써주는 사람도 있는데 난 그런 것은 몹시 싫어한다.

     

    읽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니까, 나는 구체적인 예시를 들면서 이래서 내가 이 사람을 이렇게 생각한다 하고 써주는데 그래서인지 그녀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다 내 추천서를 들고 원하는 곳에 들어갔으니 난 그저 황송할 뿐이다.

     

     

    지금은 오래된 얘기지만 친구 아들 중에 엄마가 법대 교수인 사람이 있는데 내가 방문했을 때 그녀는 법대 지망생들 추천서를 읽던 중이어서 추천서를 몇 개 보여주었다.

     

    그녀는 성의 없게 쓴 추천서를 몇 장을 내게 보여주었는데, 그때는 지금보다 영어실력이 한참 뒤처질 때인데도 불구하고 내 눈에도 추천서가 너무 엉터리 같았다.

     

     

    "글쎄 이렇게 단 몇 줄을 법대 지망생 추천서라고 써주는 이런 사람들 좀 보세요. 이런 추천서 들고 온 사람들은 거의 탈락이라고 보면 돼요."

     

     

    그녀와 이런 대화를 나눌 때에는 내가 나중에 추천서를 써주는 위치가 될 것이라고 상상도 안 했기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 하고 들었는데 나중에 추천서 청탁을 받을 때면 이 일이 꼭 떠올라서 잘 써줘야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니 오래전의 단순한 대화가 내 인생에도 큰 영향을 미친 셈이다.

     

     

    그녀는 뉴욕에서 아주 큰 병원으로 옮겼는데 얼마 전 통화에 의하면 작년에 연봉을 이미 여섯 자리로 받고 있고, 앞으로는 의사시험도 남은 것 다 치고 레지던트 끝내고 CARDIOLOGIST로 미국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하여서 "CARDILOGIST 되면 나 많이 가르쳐 줘야 돼" 하고 나는 얼른 부탁을 하였다.

     

     

    외국에서 의대를 졸업한 사람들이 요즘 미국에서 레지던트 자리 따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데, 이번에 나와 같이 일하게 된 A는 미국에서 Pediatrician이 되고 싶어서 레지던트 자리에 지원한다면서 추천서 부탁을 어렵사리 머뭇거리면서 하기에 써 주겠다고 선뜻 대답을 하였다.

     

     

    대답을 하고 보니 '이건 정말 중요한 추천서인데, 잘 써 줘야 하는데, 이 사람 인생이 걸린 문제인데 어떻게 써줘야 하나' 며칠을 고심했다.

     

    서류접수기간이 많이 남아있지만 날짜가 많이 남아있어도 지원자 수를 제한하니까 빨리하지 않으면 서류를 접수조차 못한다 하기에 이번 주말에 꼭 써서 월요일에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금요일 밤, 내가 본 환자들 Porgress note를 다 쓰고 나니 8시가 넘었는데 이 추천서를 오늘 밤에 쓰지 않으면 그 스트레스 때문에 내가 잠을 편히 잘 수 없을 것 같아서 쓰기로 작정을 하였다.

     

    빨리 써야 우리 딸이 일차로 고치고, 아무래도 이번 추천서는 교육병원의 의대 교수들이 읽을 테니 의대 교수이신 우리 선생님이 고치는 게 유리할 것 같아서, 여차여차해서 추천서를 써주기로 했는데 내가 쓴 것을 것을 고쳐주십사 했더니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셨다.

     

     

    컴퓨터를 켜고 이름을 쓰고 나니 정말 막막하였다.

     

    '서두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으니 떠오르는 생각들, '내가 왜 이건 해준다 했을까? 이렇게 중요한 추천서를, 다른 사람이 좀 써주면 안 되나? 내가 사인은 얼마든지 할 텐데….. 어떻게 하지?' 컴퓨터 화면을 10여 분간 뚫어지게 응시하다 겨우 서두를 꺼냈다.

     

    다행히도 서두를 꺼내고 나니 쓸 말이 떠올라서 이런저런 그의 좋은 점을 부각시키면서 그래도 한 페이지를 채울 수가 있었다.

     

     

    이렇게 쓰는데 한 시간 반은 걸린 것 같았다.

     

    같이 일하는 의사들이 내가 추천서를 써주는 것을 옆에서 가끔 지켜보았는데 10분 정도 걸려 보였다.

     

    성의가 없어서 그냥 휙 써주는 게 아니고 일단 타이프 치는 속도가 나보다 엄청 빠른 데다 나처럼 영어를 쓸 때 이렇게 쓸까, 저렇게 쓸까 영어 때문에 고민할 일이 없는 사람들, 또 추천서를 자주 써 주니까 그러리라.

     

    그렇지만 옆에서 지켜보니 타이프 속도도 빠르고 나는 한 시간 이상 걸리는 일을 뚝딱 해치우니 많이 부러웠다.

     

    그래도 나도 그전에는 영어로 무슨 이유든 편지를 쓰려면 하루가 걸렸던 것에 비하면 많이 발전했지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우리 딸에게 일차 교정을 보게 하고, 선생님께 이메일을 보냈더니 주일날 아침에 답장이 왔다.

     

    두 번 교정을 본 그 중요한 추천서를 딸과 함께 천천히 두 번 다시 읽으면서 마지막 교정을 하고 우리 딸이 양식도 professional 하게 고치고 나니 주일 저녁, A의 advisor에게 추천서를 보내고 A에게도 줄 추천서를 프린트하고 나니 어깨에서 큰 짐이 뚝 떨어져 나간 듯이 홀가분하였다.

     

     

    월요일에 출근하여 내가 쓴 추천서를 현직 의대 교수가 내 영어를 고쳤으니 염려 말라고 건네주니 읽어보고는 너무 흥분하면서 아주 잘 썼다고, 나 같으면 이 사람 뽑겠다면서 아주 좋아하였다.

     

     

    영어는 괜찮은데 이름이 너무 미국인 같지 않으면 누가 써줬나 의심을 할지도 모른다는 기우에 내 미국 이름도 편지 끝에 넣고 서명을 하였다.

     

    그의 advisor는 본국에서 의대 교수를 하다가 미국에서 레지던트 자리를 찾는 외국 의대 졸업생을 도와주는 비즈니스를 30년 정도 한 베테랑인데, 그녀도 추천서가 너무 훌륭하다고 하였다.

     

    나한테 고맙다고 하면서 흥분한 목소리로 "excellent, excellent"를 연발하면서 자기는 이런 종류의 추천서가 필요하다고 하는 전화 녹음 내용을 A가 내게도 들려주었다.

     

     

    이런 추천서는 회사 아카데미 부서를 통해서 공식적으로 해야 한다고 디렉터 닥터가 알려 주어서 아카데미 부서 디렉터한테 이메일을 보내고 협조를 구하면서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편지 내용은 단어 하나라도 절대 고쳐서는 안됩니다. 이 편지는 현직 의대 교수께서 이미 한번 고쳤습니다"

     

     

    나는 A를 좀 안심시키고 좋은 말도 해주고 싶어서 "지금까지 내 추천서 가지고 사람들이 원하는 곳으로 다 갔어요. 당신도 잘 될 거예요. 그리고 나도 추천서에 관해서는 내 완벽한 기록을 깨고 싶지 않군요.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다 했으니 기도하면서 기다립시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요즘엔 외국 의대 졸업하고 미국에서 전문의 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들어서 정말 잘 될까?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게 없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회사 아카데미 부서 디렉터도 이 사람이 레지던트 자리 구하나 못 구하나 아주 관심이 많은지 결과가 나오면 꼭 알려달라고 내게 이메일로 부탁을 하였다.

     

    아주 어렵다는 소리를 이 사람도 들었으리라.

     

     

    A는 추천서가 3장이 필요한데 두 장은 본국에서 같이 근무하던 의사에게 또 한 장은 의대 교수에게 부탁을 했더니 그중의 한 명이 무슨 말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니 A가 대충 써주면 그걸 바탕으로 자기가 보완을 해서 써 준다고 했다면서 "내가 내 추천서를 뭐라고 쓰나요?" 하면서 난감해 하였다.

     

    그의 말에 난 대답 없이 웃기만 했지만 사실은 이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나, 그 사람 심정 이해가 가요. 실은 나도 그랬거든요. 쓰기 정말 어렵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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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여러 사람 거쳐서 정보를 조금 얻었습니다. 근무환경은 병원 보다 나쁘고 환자가 건강상태가 갑자가 안좋아지거나 하면 간호사가 쓴 노트를 리뷰를 자세하게 하여 법적으로 책임 공방을 하는 부분이 제일 힘들었고 페이는 교도소 간호사가 공무원에 속하니까 일반 병원 보다 약간 적다고 하네요. 간호사로서 미국에서 일을 하려면 영어를 좀 해야 할 것이고 교도소에 근무 한다고 해서 별반 다를 것은 없겠지요. 영어는 일하다 보면 많이 늘어요

    22.02.27 09:22:57
  • 정보주셔서감사합니다.가끔씩교도소간호사에대한정보도올려주시면감사하겠습니다.
    오늘도행복한하루되셔요 ~^-^

    22.03.01 08:33:03
  • 선생님!안녕하세요~가끔씩선생님글잘보고있습니다.
    저는지금한국에서일하고있는데미국의교도소에서일하는간호사에대해서궁금합니다.근무환경이리든지
    Pay라든지영어수준은어느정도여야하는지요...그쪽으로궁금한데물어볼데가없어서요.
    선생님이나아니면주의에그쪽계통에서일하시는분계시면답변부탁드리겠습니다.감사합니다~^^

    22.02.19 01:17:57
  • 이곳에서 뵈어 반가와요 잘지내시는 모습 보고 기뻤어요 수경이여요 기억하시는지요^^

    22.02.03 15:07:09
  • 쪽지 한번 주실래요 ?

    22.02.09 03:27:45
  • 발표 3 월에 나요. 몇군데 인터뷰 초대 받아서 갔다 왔습니다, 너무 감사하지요. 내가 쓴 추천서를 업로드 해 주었는 데 A 가 시키는 대로만 하는데도 30분 걸렸습니다. 머리나쁜 사람 의사 못하겠다 하고 A 하고 같이 웃었어요. 결과 알려 드릴께요

    22.01.20 08:58:30
  • 감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그래서 A님은 합격하셨나요? 저도 궁금하네요 ㅎㅎ

    22.01.15 12:5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