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숙의 NP일기
  • 미 동부 최고 병원 응급실 방문기

  • 난 수요일부터 복부에 약간씩 통증을 느끼기 시작을 했는데 저녁이 되니까 통증이 점점 심해져 왔다.

    다음날 출근을 못 할 것 같아서 일단 내 환자 스케줄을 다 취소를 시키고 출근을 못 할 것 같다 알려 주었다.

     

     

    그리고 목요일 오전 중에는 통증이 나아지나 했는데 오후가 되니 다시 심해졌다.

    설사도 계속 나더니 그날 밤엔 위벽을 누가 칼로 긋는 것 같은 무시무시한 통증 때문에 밤에 두 번이나 깨었다.

    의사에게 가려면 많이 아플 때는 응급실이 정답이지만 응급실은 정말 가기 싫은 곳이고 또 7월 1일은 의사가 새로 바뀌는 날, 미국에서는 7월에는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지경.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내 주치의가 엄청 바쁘셔서 망설이다 전화를 해서 약을 몇 가지 처방을 받았는데 너무 걱정을 하셔서 염려 마시라 더 아프면 응급실 가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난 이미 이틀째 제대로 먹지 못하고 오심, 구토에 시달려서 기운이 많이 빠져 있어서 응급실에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만 하고 있었다.

    밖에서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어서 더 결정을 못 했는데 갑자기 앉아있다 일어나는 데 현기증이 오면서 쓰러질 것 같았다.

     

     

    혈압이 많이 떨어진 것 같아 겁이 난 나는 당장 응급실로 향했다.

    우리 동네에도 큰 병원이 여럿 있지만 난 아무리 폭우가 쏟아진다 해도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컬럼비아 병원으로 가고 싶었다.

    아들은 비가 쏟아지는 데 왜 옆에 병원 놔두고 거기까지 가느냐고 화를 냈지만 금방 죽을 병도 아닌데 자기가 편한 곳으로 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거의 한 시간 반 걸려 응급실에 도착, 대기실에 들어서자마자 "나 너무 어지럽다" 했더니 간호사가 바퀴 달린 의자에 급히 앉히더니 무조건 응급실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난 기다리지도 않았다.

    아무리 급해도 내 손목 밴드는 만들고 들어와야 하는 데 그것도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내 이름과 생년월일을 물어보러 날 따라 들어와서 얼른 해결해 주었다.

     

     

    내 담당 간호사와 곧 만났고 내가 여기서 32년 다니고 퇴직한 간호사라 했더니 "이렇게 젊은 사람이 퇴직이라니요?" 하고 무척 놀라면서도 이미 태도가 달라져 있었다.

     

     

    사람들이 늘 내게 묻고는 한다.

    왜 그 먼 컬럼비아 병원까지 꼭 가느냐고...

    내 대답은 언제나 한 가지 “컬럼비아에 가면 공주 대접해 주는 데 그리로 가야지 어떻게 해?”

     

     

    내 담당 의사는 금발의 숏커트를 한 백인이었는데 아주 친절하고 상냥하였고 내가 너무 오심, 구토, 위의 통증이 심하다 하니 진정제와 진통제를 먼저 처방을 해 주어서 내가 숨을 돌리게 해 주었다.

     

     

    담당 간호사가 금방 와서 피검사를 여러 가지를 했는데 고맙게도 혈관을 한 번에 딱 잘 찾아주었다.

    난 혈관이 좋지 않아서 가끔 고생을 하는 데 한번 시도에 성공을 하더니 약 타령을 하는 내게 내 주머니에 다 있다고 안심을 시키면서 injection을 할 때마다 무슨 약이 들어간다고 알려주었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모르핀을 맞았는데 약효는 딱 두 시간, 2시간 후에 또 아프다 하니 용량을 올려서 또 얼른 놔 주는 데 얼마나 눈물 나게 고맙던지......

     

     

    내가 간호사 현역 시절 환자가 아프다고 하면 얼른얼른 의사 찾고 약을 찾아서 환자 통증을 해소해 주는 데 최선을 다해서 이런 고마운 대접을 받나 보다 생각을 하면서 잠이 들었다.

    의사가 CT를 찍겠다고 하는 소리를 아련히 들으면서......

    그때가 자정을 넘어선 시간.

    환자방에 자리가 없어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냥 stretcher에 곤한 몸을 겨우 뉘었는데, 여기서도 괜찮으니까 치료만 해 달라고 했다.

    너무너무 아프고 힘들었으니까......

    그렇지만 직원들은 몹시 미안해하였다.

     

     

    방안으로 옮겨지고 약기운에 다시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천둥 치는 듯한 소리에 잠이 깼다.

    웬 소음인가 했더니 내 룸메이트인 흑인 할머니가 옆에 흑인 환자가 들어왔다 고 서로 떠드는 소리였다.

    그중의 한 명은 내가 그 큰 응급실이 떠나가도록 구역질을 해서 이 사람 저 사람 뛰어오고 아프다고 야단하는 것을옆에서 고스란히 지켜본 사람인데 너무 어이가 없었다.

     

     

    난 새벽 3시에 큰소리로 잡담을 할 기력이 있는 사람들이 무슨 응급상황이라고 응급실 베드를 차지하고 누워있는지, 그것부터가 맘에 안 들었지만 그녀들의 잡담 때문에 잠이 깨서 너무 화가 났다.

     

     

    난 큰소리로 내가 지금 진통제 맞고 잠이 들었다가 당신네들 목소리에 깼으니 목소리를 조금 낮춰 달라고 했더니 정말 큰 목소리로 응급 실은 잠자는 데가 아니라고 하면서 더 크게 떠들었다.

    정말 교양이라고는 약에 쓰려고 찾아도 없는 매너 없는 사람들이었다.

    진통제를 맞았으면 잘 수도 있는 데가 응급실이라고 쏘아 주었다.그녀들의 큰소리 잡담은 한 시간이나 계속되었고 그 소음은 정말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오심과 통증이 점점 심해져서 도저히 거기에 있을 수가 없었다.

    비틀거리면서 나오는 내게 모두들 자리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난 한 간호사를 붙잡고 자초지종을 설명을 하면서 사정을 하는 데 얼마나 화가 나는지 눈물을 쏟을 뻔하였다.

    결국 나는 또 한 번 요란한 구역질과 함께 먹은 것도 없는 속에서 다 토해냈으니 그 괴로움이 참으로 심하였다.

    간호사는 방을 곧 옮겨 주었고 난 진통제를 또 한 번 맞고 CT를 찍고 왔다.

     

     

    Contrast 때문인지 몸이 가렵다 했더니 Benadryl 을 또 얼른 담당 간호사가 놔 주었다.

    내 담당 간호사가 IV로 주사를 참 많이 주었는데 나한테 올 때마다 얼마나 종종걸음으로 달려오는지 내가 케어를 받는 입장이 되어보니 간호사의 환자를 배려하는 몸짓 하나하나가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비몽사몽간에 옆을 보니 내 룸메이트는 긴 치마에 스타킹을 신은 조용한 유태인 부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 다행이다, 떠들지는 않겠다......

    지난밤 의료진한테 고맙단 말도 못 했네......

    다시 잠이 들었다가 깼는데 이번에는 몇 시간 전에 트라우마를 봉합해 주고도 남을 만큼 너무나 기분 좋게 깨었다.

     

     

    의료진이 아침이 되어서 교대를 한 모양인데 attending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서 라운딩을 하는 것 같았다.

    두 의사는 자기의 이름을 소개하면서 treatment plan 을 낮은 소리로, 아주 기분 좋게 들리는 목소리의 톤으로 조용조용 설명하는 데, 마치 내 잠을 깨워주는 새소리처럼 들렸다.

    '아니 어떻게 사람 목소리가 새소리처럼 아름답게 들릴 수가 있지?'난 지금까지 살면서 사람 목소리를 새 지저귐처럼 느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내겐 참으로 크고도 중대한 발견이었다.

    환자를 배려하는 내공을 얼마나 쌓았으면 저렇게 아름다운 소리로 심신이 지쳐 있는 환자를 깨울 수 있는지, 난 그 두 의사가 너무 존경스러웠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데 새가 마당에서 정말 아름답게 지저귀고 있음은 우연일까?

    새들이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줄 알고 맞아 맞아, 우리가 노래하는 소리 들으면서 잠 깨는 게 얼마나 좋은지 사람들은 잘 몰라요. 많이 알려주세요 하고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오래전 좀 시끄러운 동네 아파트에 살다가 뉴욕시 교외 학군 좋은 곳에 집을 사서 이사한 첫날 아침, 시끄러운 차 소리 대신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떴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이 경험은 그때 감동 그 자체로 다가왔고 내가 인생을 살면서 절대 잊지 못하는 큰 감동의 순간이 되었다.

     

     

    시계를 다시 보니 아침 10시, 지난밤의 고통과 괴로움이 사라지고 나니 어제 오후부터 오늘 아침까지 겪은 일이 일장춘몽 같았다.

     

     

    의사는 집에 가도 된다고 했다.

    집에 가고는 싶지만 "또 nausea 하고 pain 있으면 어떻게 해요?" 겁이 나서 묻는 내게 그는 경쾌하게 대답했다.

    "다시 오세요."

     

     

    아침 9시부터 가족들에게서 전화가 불이 나게 왔다.

    밥을 먹어 보고 괜찮으면 퇴원을 하라고 했는데 아들에게 데리러 오라고 했더니 몇 시까지 가야 하느냐고 계속 전화를 하기에 어디 놀러 가려고 그러느냐 했더니 기특하게도 엄마가 병원에 혼자 있는 게 불쌍해서 엄마 하고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런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 때문에 가족이 함께 있을 수가 없어서 오지 말라 했는데 주위에 보니 가족들이 한 명은 되는 것 같았다.

     

     

    지난밤에 맨해턴으로 출퇴근을 이제 시작한 딸에 게 한인 타운에 들러서 전복죽, 야채죽을 사 오라 했더니 폭우를 뚫고 20분 넘게 걷고 차를 갈아타면서 사 왔다고 했는데, 난 그 죽이 먹고 싶었다.

     

     

    의사가 뭘 좀 먹어보라고, 그래야 집에 가라고 할 테니까, 샌드위치를 한 박스 갖다주었는데 먹을 수가 없었다.

    집에서 음식을 가져오니 그걸 먹어 보고 괜찮으면 집에 가겠다 하였다.

    응급실 베드는 기다리는 환자가 언제나 많으니까 보내도 되는 사람 빨리빨리 보내서 베드를 확보해 놔야 하는 사정을 아는 나는, 내 자리로 누가 들어와야 하면 나 의자에 앉아 있겠다고 부스럭 거렸더니 아니라고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면서 내쫓는 것 아니라면서 몹시 미안해하였다.

    내가 이 사람들을 이해해 주지 않으면 누가 이해를 하랴......

     

     

    아들이 가져온 야채죽 사진을 찍어서, 아들이 병원으로 죽 배달을 왔어요~ 효도 봤어요~ 하고 절친들에게 사진을 보냈더니 갑자기 웬 응급실 행? 하고 모두들 놀랐다.

    친구 중 하나는 그날로 내게 병원으로 병문안을 온다고 부군 되시는 분이 연락을 하셔서 “저 벌써 집에 왔어요“ 하였다.

    퇴원하면서 의사 오피스에 가서 고맙다고 얘기도 하고 그 의사 말소리에 내가 잠을 깨면서 느낀 느낌을 얘기해 주었더니 몹시 쑥스러워 하면서도 고마워하였다.

     

     

    응급실에 환자로 가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밤을 새우며 일을 하면서 언제 들어 닥칠지 모르는 응급 환자 들을 위해서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을 보니 얼마나 고맙고 또 든든한 지 모르겠다.

    참으로 고맙고 고마운 분들이시다.

    그중에서도 의료진들께 정말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퇴원을 하면서 드는 첫 번째 생각, 내 보험에서 얼마나 청구를 하려나......

    아무리 많이 청구한다 한들 내가 그렇게 많이 아프고 힘들 때 편하게 해 준 곳이니 그게 대수랴?

    병원은 정말 좋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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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응급실 처치 자체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마약성 진통제를 쉽게 사용한다는 것을 빼면 말예요.
    그래도 Sx. control만 하고 귀가할 대상자에게 plan을 자세히 설명해준다는 건 역시 미국답다 생각해요! 한국 ER에선 이상 없으니 가면 됩니다~ 라는 말만 하고 보내버리는 게 다반사니까요

    21.08.12 01:42:02
  • 제 유튜브 들어가셔서 댓글에 이 멜을 남겨 놓으시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유튜브는 medical ENGLISH 치시고 kYUNGSOOK Kim 치시면 제 비디오가 뜹니다. 최근 비디오에 연락처를 남겨 주세요

    21.07.16 10:14:48
  • 익명

    선생님 책 검색하는데 찾기가 어려워서요. 어디서 구할수 있는지 알려주실수 있나요?

    21.07.16 08:2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