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숙의 NP일기
진단서를 요구하는 환자들의 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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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감기가 심하게 걸려서 오늘 출근을 못했다면서 진단서를 떼어 달라고 했다.
Exam 을 해 보니 목이 약간 빨갛게 부은 것 말고는 별로 아파 보이지 않는 데 진단서를 떼어 가야 페이가 나오는 모양, "진단서 때문에 오셨지요?" 단도직입적인 내 질문에 그는 약간 주저하는 듯하더니 여러 번 보아 온 그의 회사 진단서를 꺼냈다.
나는 그 진단서를 여러 번 보았는데 그것은 뉴욕시 교통국 소속 직원들이 늘 가져왔기 때문, 특이한 것은 그곳 직원들은 회사 제출용 진단서를 책처럼 가지고 다니면서 간(?)도 크게 내 앞에서 한 장씩 부욱 찢어 주었다.
'어떻게 진단서를 책처럼 가지고 다니시나요?
꾀병하면서 출근은 하기 싫고 돈은 받아야 되겠고 그래서 그렇지요?
그러니까 당신들 같은 사람들 때문에 버스 요금, 지하철 요금은 계속 오르고요.'
난 이 말이 정말 싶었지만 하지는 못했고 별로 친절하게 대해 주지는 않았다.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알면서도 진단서를 써 주어야 하나?
갈등이 심했던 나는 Nurse practitioner로 처음 시작하면서 ER attending인 친구한테 하소연을 하였다.
친구
일해 보니까 어때? 쉽지?
나
얘는, 무슨 소리야, 아 너야 의대 나왔으니까 쉽겠지, 난 솔직히 좀 무서워, 그렇지만 무섭다고 안 하면 평생 못 할 테니까 공부한 게 아까워서 꾹 참고하는 거야.
그런데 왜 그렇게 거짓말로 아프다고 진단서 써 달라는 사람이 많니? 너무 싫어.
친구
그런 것 써달라 하면 얼른얼른 써 줘, 싫은 내색하지 말고
나
어머, 얘 좀 봐, 뭐라고?
그럼 나 보고 거짓말하는 데 동조 하란 말이냐?
나 그러기 싫어
친구
야, 너 잘난 척하지 마.
누구는 거짓말하는 줄 모르고 그냥 진단서 써 주는 줄 아니?
거기 빡빡한 여자 있다고 소문나서 환자들 안 오면 너 금방 잘려.잘리고 싶으면 맘대로 해.
너 그런 것 잘 안 해 주면 네 프랙티스 주인이 싫어해, 환자들 떨어져 나가서 네가 돈 못 벌어 들이고 그러면 싫어해.
잘난척하지 말고 내말 들어.
나
………… ( 잘린다고 ?)………
알았어, 그러면 잘 써줄 게.
이런 대화를 주고받은 후 그야말로 잘난척하다가 잘리지 않으려고 나는 꾹 꾹 참아왔는데 이 남자는 3일 전에도 왔다간 기록이 나왔다.
나
3 일 전에 약을 여러 가지 드렸는데 다 드셨나요?
그런데도 차도가 없으세요?
환자
약은 하나도 안 먹었어요.
나
왜 안 드셨나요?
처방해 드린 약은 드시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3일 만에 또 오시면 저흰 어떻게 하지요?
환자
실은 와이프가 먹지 말라고 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환자가 거짓말하면서 진단서만 받으러 온 것 때문에 이미 속으로 약간 짜증이 나 있던 나는 결국 한마디 하고 말았다.
나
아니 와이프가 의사는 아닐 테고 왜 와이프 말을 들으시나요?
그리고요 이렇게 3 일 만에 다시 오시면 우리가 치료를 잘 못해서 그런 것 같은 인상을 줄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아주 곤란 합니다.
저희 입장도 생각해 주시고 다음엔 그러시지 마세요.
3일 전에 드린 약, 약국에서 받으신 것 있지요?
그거 드세요.
3 일 만에 또 항생제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환자
실은 약국에서 약 찾지도 않았어요.
죄송합니다.
오늘 찾아서 오늘부터 먹을게요.
( 맙소사, 약 안 찾았다는 얘기나 하지 말지, 약 안 먹고 3 일 버티다 또 출근 안 하고 또 진단서 받아서 3일 또 놀면서 돈 받으려고, 지금 나는 바보입니다 하고 광고 하나?)
나
오케이, 그런데 그전에 본 사람이 3일 쉬라고 했네요.
환자
오늘 진단서 써 주실 수 있지요?
그러면서 이 환자도 그 회사 전용 진단서를 내가 그렇게 속으로 싫어하는 지도 모르고 다른 교통국 직원들처럼 내 앞에서 한 장 부욱 뜯어냈다.
나
오늘은 여기 오셨으니까 써 드리지요.
그렇지만 또 3일 쉬라고는 못 써드립니다.
환자
그럼 며칠………
나
내일 하루 쉬시고요, 모레부터는 출근하세요.
오늘, 내일 이틀 쉬시라 써 드릴게요.
증상이 심하지 않으니까 오늘부터 약 드시면 모레는 충분히 출근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환자
고맙습니다.
나
네, 꼭 약 잘 챙겨 드시고요.
혹시 나아지지 않으면 다시 오세요.
(그렇지만 나 일하는 날엔 오지마세요. 당신 같이 꾀병하고 진단서나 끊으러 오는 사람 보면 혈압이 오르거든요.)
환자는 나갔고 진료기록을 얼른 훑어보니 이 urgernt care 단골 환자로 언제나 비슷한 증세로 수시로 오는 환자였다.
뉴욕시 교통국 직원은 복지와 급여가 좋아서 여기서도 철밥통이라 불리는 데 그런 직장에 다니면서 왜 저러나 싶어서 좀 착잡하였다.
이 환자 말고도 배가 약간 아프고 설사를 몇 번 해서 왔다는 환자들이 부지기수인데 거기까지 들으면 난 더 묻지도 않고 진단서 때문에 왔느냐고 묻고 얼른얼른 써서 보냈다.
진짜 아픈 환자들에게 할애해야 할 시간을 뺏기니까.
진단서를 요구하는 또 다른 유형의 환자는 허리 통증이 으뜸인데 자기네가 허리가 아파서 왔다는 것도 잊었는지 허리 통증이 있는 사람이 나타내는 증상은 전혀 없기도 하였다.
여기저기 움직 여보고 만져봐도 아프단 말조차 안 하면서 진단서에는 일주일 쉬게 해 달라는 사람도 많았다.
그렇게 오래 쉬시라 하기에는 증상이 심하지가 않습니다.
병가 드리는 날짜 하고 증상이 어는 정도 심한 지 일치해야 하고, 그렇게 일주일씩 쉬라고 하면 진료 일지에 정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 데 그럴 수가 없습니다.
3일 쉬고 출근하세요.
꾀병을 하는 자들이여, 내게로 오지 마시라……….
난 당신들 꾀병하고 놀면서 돈을 받는 데 도움을 주려고 그 길고도 힘든 nurse practitioner 과정을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꾀병을 하면서 진단서를 끊으러 다니는 사람들 과는 달리 많이 아픈데도 약을 먹고 출근하면 안 되겠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는데 지금 증세로 보아서 쉬셔야 할 테니 집에서 쉬시라, 노트를 써 드리겠다 내가 권유하는 환자들도 가물에 콩 나기로 가끔씩 만나기도 하였다.
처음엔 이런 사람들 하고 마주치는 게 참 싫었는데 그런 게 싫다고 프랙티스를 안 할 것도 아니고 내가 좀 참작하고 나를 다래고 나니 그전처럼 많이 싫지는 않았다. 이런 변화도 NP 로써 경력이 쌓이니 느끼는 변화이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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