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숙의 NP일기
  • 연락 두절이 된 환자와 Department of Health (보건국)

  • 젊은 히스패닉계 청년인 그는 오피스로 들어서는 발걸음이 아주 조심스러웠고 주눅이 들어 보였다.

     

    불장난을 하고 성병 검사를 하러 왔나 보다 짐작을 하고 나는 오피스 문을 닫았다.

    환자가 대답하기 불편해하는 질문들, 나도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질문들을 치료자의 입장에서 해야 할 테니까.

     

    나: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환자: "여기 좀 보세요, 이렇게 발진이 계속 돋아나네요. 발, 몸통 그리고 여기 얼굴에도요. 왜 그런가요?"

    나: "private area에는 안 났나요? 언제부터 이랬나요?"

    환자: "났어요. 그리고 한 3 주쯤 됐어요."

    나: "그래요. 그럼 빨리 오지 왜 3주씩이나 기다렸어요?"

    환자: "혹시 나아질까 하고요. 그런데 나아지지 않고 발진이 여기저기 온몸에 자꾸 다 돋아나서 진찰을 받아보려 왔습니다. 그리고 자꾸 가려워요."

     

    나는 장갑을 끼고 그의 발진을 자세히 살폈더니 발진의 크기는 비슷한데 모양새가 제각각인 것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혹시 syphilis? 아닐 거야.

    난 고개를 저었지만 발진 모양이 영 맘에 걸렸다.

     

    발진을 살핀 후에 본격적으로 문진에 들어갔다.

     

    나: "그전에 성병 걸린 적 있어요? 성병검사 해보셨나요? sexually active하신가요? 파트너는 몇 명이에요? 남자? 여자?"

    환자: "그전에 여자 친구 파트너가 여러 명 있었는데 지금은 파트너가 없던지 몇 개월 됐어요. 성병 검사도 과거 private area가 좀 가려워서 해 보았는데 다 괜찮다고 나왔고요. 한 달쯤 전에 fungal infection이 있다고 해서 이 약을 처방받았어요."

     

    그 약은 내가 보니 anti fungal ointment였다.

     

    나: "그 약이 잘 듣던 가요? 증상도 그때와 비슷한가요?"

    환자: "네, 이 약 쓰고 좋아졌어요. 같은 약을 주실 수 있나요?"

    나: "드리지요. 그러면 오늘 HIV test부터 모든 성병 검사를 다 할 테니 반드시 3일있다 결과 보러 오세요. 꼭 오셔야 됩니다."

     

    나는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했고 환자는 시원스레 그러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모든 테스트 결과가 5일 후에 내 아이패드에 입력이 됐는데 놀랍게도 RPR이 positive, Syphilis였다.

    난 프랙티스를 하면서 syphilis환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또 이런 환자는 꼭 DOH, Department of Health에 보고를 해야 한다고 들어서 신경이 많이 쓰였다.

     

    일단 환자부터 치료해야 하니 환자에게 전화할 일이 있으면 보조원들에게 전화를 걸라고 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데 이번에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여 환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not in service라는 녹음만 계속 나왔다.

    혹시나 해서 다시 몇 번 걸었어도 똑같은 녹음만 반복돼서 나왔다.

    치료를 꼭 해야 하는 데 어떻게 하나? 환자와 연락이 안 되니 큰일이네…..

     

    일단 환자 차트에 내가 전화를 여러 번 걸었다는 기록부터 남기고 오피스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Abnormal Lab result때문에 환자를 꼭 찾아야 한다 하니 집으로 내용증명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환자 집에 내용증명을 보냈다는 증거를 반드시 환자 차트에 남겨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니 환자가 영수증에 사인해서 보내면 그걸 스캔해서 차트에 꼭 붙여 놓겠다고 했다.

    이걸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환자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이 우리에게 돌아올 테니 철저하게 해놓으라 여러 번 강조를 하였다.

     

    이건 이렇다 치고 이제 DOH에 오더를 낸 사람인 내가 보고할 의무가 있다니까 그걸 처리해야 하는 데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 난감하였다.

    생각해보다 여러 번 해보았다는 NP에게 자세히 물어서 report form을 프린트해보니 4 페이지나 되었다.

     

    하는 수 없이 매니저 의사에게 SOS를 쳤더니 자기도 한 번도 안 해 봐서 잘 모른다며 발뺌을 하려는 기색이 보여서 나는 이때다 싶었다.

     

    나: "그럼요, 잘 됐네요. 이번에 한 번 해보세요. 매니저는 다 알아야 하잖아요. 이번에 한번 해보시면 잘 알겠네요. 해보시고 나한테도 좀 가르쳐 주세요. 그럼 내가 다음번에는 당신한테 배워서 내가 보고 할게요. 부탁합니다."

    매니저: "그, 그런가요?"

    나: "그럼요. 매니저가 모른다면 좀 그렇잖아요. 부탁해요. 오늘 당장 해야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않겠어요? 그리고 난 오늘 이 보고서 DOH에 안 보내면 내 성격상, 나 오늘 밤에 잠 못 잘 거예요. 할 일을 안 해서요. 내가 밤에 잠 제대로 못 자도 좋아요?"

     

    사람 좋은 매니저는 이 일로 밤잠도 못 잘 것이라면서 은근히 압력을 넣으며 엄살을 떠는 내게 넘어가서 오늘 안에 꼭 해주겠다고 덜컥 약속을 하였다.

     

    나는 매니저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지만 할 말은 해야겠기에 계속 말을 이어갔다.

    보고자는 당신이 아니고 김경숙이니까 보고서에 당신 정보가 아닌 내 정보를 꼭 넣어야 한다는 것과 DOH에 팩스를 보내고 난 후에는 내게 다 끝났다고 문자를 하나 보내 주면 내가 오늘 밤에 안심하고 잠을 잘 수가 있을 테니 꼭 문자를 보내달라고 덧붙였다.

     

    아침에 부탁을 했는데 오후까지 연락이 없어서 조바심이 난 나는 염치 불고하고 했느냐고 문자로 물었더니 좀 있다 할 것이라는 답장이 왔다.

    그리고 두 시간 후에 “Done” 하는 그의 문자가 왔는데 얼마나 반갑고 고맙고 미안한지…….

     

    내가 도와달라 할 때마다 꼭 정성스럽게 잘 도와주는 당신의 고운 마음씨를 잊지 않겠다고 너무 고맙다고 답장을 했다.

     

    치료를 해야 하는 환자가 연락이 안 돼서 치료를 못한 것까지 내 책임은 아니지만 환자가 치료를 제때 받지 않고 이 세상(?)을 오염시키면서 계속 다닐 것이라 생각하니 영 개운치가 않았다.

    그래도 환자가 걱정이 된 나는 이틀 후에 다시 환자 차트에 들어가 보니 환자 엄마와 연락이 돼서 환자의 새 전화번호를 알아내 환자에게 연락이 갔다고 적혀 있었다.

     

    환자가 온다고 한 날 나는 일을 하지 않아서 차트를 다시 읽어보니 놀랍게도 환자가 DOH에서 이미 약을 받아서 약병을 가지고 왔다고 적혀 있었다.

    그때는 내가 아니 매니저가 팩스로 보고서를 보낸지 3일 밖에 안되는 날인데, 내가 환자 못 찾는다고 그래서 치료를 못했다고 보고서에 적고 수선을 피우는 동안 이미 DOH가 환자를 낚아채서 투약을 시작했다는게 너무나 신기하고 놀라워서 매니저에게 얘기를 해 줬더니 매니저도 그러냐고 큰 눈을 더 크게 뜨면서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원래는 페니실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환자가 페니실린에 심한 부작용이 있다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경구로 투약을 시작한 것으로 보였다.

     

    우와, 미국의 의료 전달 체계가 엄청 신속하고 정확하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마도 Lab에서도 DOH에 보고할 의무가 있어서 Lab에서 이미 보고를 한 것 같았다.

    어찌하던 이런 중차대한 일을 여러 명에게 보고 의무를 지워놓고 혹시 우리 중 한 명이 누락되더라도 보고 의무가 있는 사람들 모두가 다 잊어버리고 안 하지는 않을 테니 DOH에는 여하튼 보고가 들어갈 테니 이렇게 철저하게 관리를 하겠지……..

     

    하여간 미국은 뭐든지 대충 돌아가는게 없는 나라야………..

     

    이런 의료체계는 정말 좋구나……

     

     

     

     

     

    ⓒ 무단전재, 변형, 무단배포 금지

    • 댓글작성하기

  • 익명

    대충 돌아가는게 없는줄 알았는데 코로나 대응하는 모습은 글쎄요?

    20.04.22 21:34:54
  • 고맙습니다

    20.03.09 10:23:19
  • 선생님 잘 읽었습니다.

    20.02.21 20:4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