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두일의 나는간호사
  • 아메리칸 스타일

  • "오우, 씨 아메리칸 스타일, 미국 영화에서 보던 거...“

     

    최근에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극한 직업>에서 나오는 대사이다. 범인을 잡으려고 잠복하던 형사들이 신분을 감추려 자신들의 관계를 둘러대는 장면인데 배우들이 이 대사를 '치면서' 진지한 얼굴 표정을 짓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보면서 많이 웃었다.

     

    이혼한 두 사람이 친구처럼 지내는 것은 미국 영화에서도 많이 나오지만 실제 생활에서도 그렇다. 두 달 전 방문한 환자의 경우도 그랬다.

     

    환자의 집을 들어서자 50대 후반의 두 여자가 밝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그중 한 사람은 환자였는데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하반신 마비 환자였다. 사고로 배꼽 아래 감각과 운동신경을 모두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이런 환자들은 감각이 없으니 작은 상처가 나도 빨리 대응하지 못하고 그러다가 절단 수술까지 받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이 환자도 오른쪽 다리는 무릎까지 절단한지 오래였고 최근에는 같은 쪽 엉덩이에 새로운 욕창이 생겨 가정간호 돌봄을 받고 있었다. 오늘 나의 주된 임무는 Wound Vac을 갈아주는 일이었다. 가끔씩 하는 Wound Vac이 손에 익지 않아서 환자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다.

     

    (1)"Bear with me, I don't do this very often, but I can do it well. It takes some time."

     

    성격이 밝은 환자는 걱정하지 말라며 이것저것 말을 이어갔다. 이전 방문간호사가 노트에 환자가 말을 엄청 많이 한다고 적어 놓았는데 정말 멈출 줄 몰랐다. 대개 말을 많이 하는 환자들은 잘 들어만 주어도 간호사들을 편안하게 대해준다. 중간중간 추임새만 넣어주면 끊임없이 말한다. 좀처럼 내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는데, 환자가 잠시 물을 마시려고 옆에 있는 컵을 집어 들었다. 이 때다 싶어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아까 들어올 때 옆에 서있던 사람은 누구입니까?“

     

    내심, '내 partner입니다.', '내 wife입니다.', '내 남편입니다.'라는 응답이 나올 것이라 기대했다. (2)LGBTQ처럼 보였다. 물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나자마자 말을 내뱉었다.

     

    "Kathy를 말하는군요? 인터넷에서 주문할 것이 있다고 하더니 바빠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네요... 제 남편 전 부인이에요. 남편이 25여 년 전에 Kathy와 결혼해 아들을 하나 놓고 살다가 5년 만에 이혼했고, 그 뒤로 나를 만나 결혼했어요. 저와의 사이에 아들 두 명을 더 낳았고요. 우리 셋은 친구처럼 가까워요. 아이들도 서로 오가죠. 남편이 지난주에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갔는데, 남편이 없는 사이 Kathy가 와서 저를 도와주고 있지요.“

     

    하반신 마비인 환자의 간병을 남편이 도맡아 하고 있었는데 여행을 떠나면서 전 아내인 Kathy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의 아내를 돌봐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한국인들은 이혼을 하고 원수지간으로 되어버리는 것이 보통인데 이런 형태의 관계 유지를 하는 미국인들이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다.

     

    최근에 소셜 미디어에서 봤던 사진들이 기억난다. 법정에서 결혼 관계를 정리하는 도장을 찍고 집으로 가면서 이제 남남이 된 두 사람이 함께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인증샷을 찍는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대단들 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헤어지는 상대방의 행복을 빌어주고 웃음을 짓는 것이 나 자신이 행복해지는데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혼까지 가는 과정이 얼마나 길고 힘들었겠는가?

     

    Wound vac 간호를 끝내고 문을 나서려는데 나를 거실의 한 쪽으로 안내했다. 한 쪽 벽면으로 휠체어를 몰고 가면서 환자의 입은 말을 하느라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도착한 벽면에는 가족사진들로 가득했다. 거기엔 남편의 전 아내와 그녀의 아들, 그리고 지금의 가족들이 함께 찍은 사진들이 몇 있었다. Good~!

     

    일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자 Director 바바라가 인사를 건넸다. 이메일로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다. 최근에 엄마가 노환으로 돌아가셨는데 내일 아침 비행기로 장례식에 참석하러 간다고 한다. 안아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I am sorry for your loss.“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라는 표현에는 'I express my condolences.'이라는 표현이 있지만 너무 무거운 표현이고 형식적이다. 'I am sorry for your loss.'가 더 격의 없이 마음을 더 잘 전달해주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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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ound vac 간호를 가끔씩 하는 편입니다. 시간이 걸리지만 잘 할 수 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2. LGBTQ :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qu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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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루

    한국의 가정간호사들도 일부 간호사만이 wound vac 케어에 익숙하죠~ 
    환자에게 솔직히 자주 해보지 않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용기,그 분위기가 부럽습니다^^ 

    20.03.15 22:2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