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두일의 나는간호사
  • 결기(Determination)

  • 1519년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는 자신의 군사 오백여 명과 배 11척을 이끌고 멕시코의 한 해변에 도착한다.그곳은 아즈텍 왕국의 수도 테노키틸란Tenochitilán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즈텍 왕국을 정복하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타고 온 배들을 모두 태워버리라." 

     

    군사들에게 아즈텍 제국을 정복하지 못하면 돌아갈 길이 없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크라운베이커리, 빵굼터 등.

     

    막강한 자본력과 노하우로 무장한 프랜차이즈 빵집들은 동네 빵집들에겐 두려움의 대상이다. 성실히 하루하루 빵을 만들어 팔던 빵집 아저씨들이 장사가 안 되어 우울해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그런데 제빵제과의 명장 김영모 사장이 운영하는 빵집은 문제없다. 김영모 사장의 빵집은 서울 강남지역 여러 곳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여러 가지 성공 요인이 있겠으나 신문 기사를 통해 김영모 사장에게서 특이한 점 하나를 발견했다. 자신이 개발한 제과제빵 노하우를 정기적으로 책으로 다 공개해 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한마디 던진다.

     

    "노하우를 숨기면 매너리즘이 더 깊어지죠."

     

    자신이 이루고 싶은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플랜 B를 없애는 것. 자신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모는 것. 어떤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다면 한 번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나도 위의 두 멋있는 분들처럼 거창하지 않았지만 내가 타고 온 배를 불태우는 심정으로 일을 저질러 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13년 전, 그러니까 2006년 5월 봄바람이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검은색 여행용 가방 하나에 등에 지는 조그마한 책가방 이렇게 단 두 가방을 들고 LA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나에겐 단 하나의 목표가 있었다.

     

    미국 간호사로 취업.

     

    갖고 있는 돈은 한국 돈으로 1,000만 원이 약간 안 되었다. 미국 생활을 해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그 정도 돈은 몇 개월 못 버틴다. 가방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 3권과 IELTS 영어시험을 위한 책 2권, 양복 1벌과 구두 한 켤레, 그리고 위아래 옷 두벌과 속옷 몇 벌. 그리고 노총각 냄새를 감추어줄 조그만 향수 한 병을 들고 왔다.

     

    관광비자 체류 가능 기간은 6개월. 영어 점수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 미국의 어떤 병원도 나를 간호사로 채용해 주겠다고 보장해 주지 않음. 면접 본 적도 없음.한국에서의 간호 경력 1년. 경력단절 10년.

     

    그런데 미국에 와서 덜컥 큰일을 저질러 버렸다.

     

    다리가 되어줄 차를 한 대 사버렸다. 차를 샀다는 뜻은 나에게 플랜 B가 없다는 뜻이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뛰어다니며 마침내 취업에 성공했다. 그 당시에 대부분의 간호사들이 에이전시를 통해서 왔지만 나는 혼자 해냈다. 도박 같은 결정은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가야 할 길 하나만 남기고 다른 길을 다 차단하는 결기가 놀라운 집중을 하도록 도왔다고 믿는다.

     

    퇴로를 없앤다는 것이 무조건 성공을 보장할까?

     

    퇴로를 없앤다는 것이 무조건 성공을 보장할까? 난 91학번이다. 그런데 99학번이 되고 싶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한의사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사회적 인식도, 그리고 대우도 무척 좋았다. 한의사라는 직업에 끌렸다. 그래서 학력고사 세대가 수능시험에 다시 응시했다. 8개월간 최선을 다했다. 점수는 나쁘지 않았다. 짧은 시간 동안의 집중된 노력 덕택에 서울권 약대 합격은 무난할 것이라는 입학 전문가의 진단을 받았다.

     

    수능을 치르고 집으로 내려온 엄마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야야... 약대가 어디노. 입학금 대줄 테니 일단 약대에 등록을 해 놓고 1년 더 공부해라.“

     

    약국에 서서 손님들에게 약을 팔면서 약에 대해서 설명하는 나를 그려보았다. 그림이 안 나왔다.

     

    "난 약 팔려고 이렇게 고생한 거 아니야."

     

    다시 선택지를 없애고 1년을 집중했다. 성적이 오히려 뒤로 물러났다. 부끄러운 결과였다. 2년간 몸이 많이 상했다. 재정적으로도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그래서 깨끗하게 포기했다.

     

    가끔씩 주위의 권유대로 그때 약대로 진학했으면 내 인생이 어떻게 풀어졌을까 생각하면서 빙그레 웃을 때가 있다.

     

    좋은 결과가 있으면 '결기'로 보이고 실패하면 '똘기'로 보이는 것 아닐까?

     

    7개월 전에도 나에게 있어서 꽤 큰 결정을 했다. 13년간 일했던 심장내과 경력을 포기하고 전혀 새로운 가정방문 간호사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때 몇 가지 질문들을 내게 던졌다

     

    '이 선택을 하지 않으면 어떤 좋은 일이 생길까? 아니면 어떤 나쁜 일이 생길까?'

     

    '이 선택을 하면 어떤 좋은 일이 생길까? 아니면 어떤 나쁜 결과가 생길까?'

     

    인생 경험이 쌓여서인지 좀 더 정교한 질문을 던졌고 더 오래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이전 경력을 포기하기로 했다. 물론 지금까지의 임상경력이 새로운 부서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새 부서에 집중하기 위해서, 양쪽 두 부서에서 일할 수 있는 방법도 있었으나 이전 경력을 완전히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나의 선택이 가져다준 결과에 만족한다.

     

    지금 현재 여러분에게 주어진 직장의 급여와 혜택, 근무환경이 달콤하여 도무지 버리기 아까운가? 박상규! 셜록 탐사보도사의 기자이자 주인장. 얼마 전 세바시를 통해 그의 강연을 듣다가 그의 결기에 감동했다. 그는 오마이뉴스 인터넷 신문 매체에서 근무를 하다가 자신이 원하는 탐사보도를 위해서 사직서를 제출한다. 그때 그의 상관은 퇴사를 하더라도 각종 보험 혜택을 그대로 유지해 줄 테니 필요하면 언제든지 다시 돌아올 것을 권유한다. 그는 잠시 고민한 끝에 그 달콤한 제안을 거절한다. 나라면 그처럼 못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제안을 거절하고 자신이 원하는 탐사보도를 위해서 지방으로 내려가 산 약초를 캐가며 자금을 마련한다. 그렇게 집요한 노력 끝에 사회에 반향을 일으키는 기사를 내게 된다. 그의 결기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하였을 기사 거리들이었다.

     

    익산 5거리 삼인조 강도 사건, 양진호 회장의 만행이 오랜 기간의 취재 끝에 폭로되었고 사회 정의가 세워지는 근거가 제공되었다.

     

    존경스러웠다.

     

    요즘 흔히 말하는 메타인지가 좋아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도 인생 성공의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는 전능자가 아니다. 우리의 능력과 환경을 100% 정확하게 파악할 수도 없고, 파악한다고 해도 통제할 능력이 없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자신을 좀 더 높게 평가하여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면 실패와 성공을 통해서 자신만의 경쟁력이 생길 것으로 믿는다.

     

    후회 없는 삶이 어디 있던가.

     

    과거의 실수와 실패가 자산이 되어 오늘 내가 만드는 선택에 도움이 된다면 저지르고 후회하는 편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고 어정쩡하게 있다가 후회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이 든다.

     

    어떤 결정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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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취업 tips

     

    1. 미국에는 나이 문화가 없습니다. 그러니 40대, 50대에도 간호학과에 들어가서 간호사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직 간호사가 아니신 분들도 나이 들었다고 도전을 포기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2. 미국 취업 면접 시, 채용담당자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대개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을 선호합니다. 그러니 다른 직업을 가졌던 사람들도 쫄지마시기 바랍니다.

     

    3. 그러나 자신이 지원하는 부서에 대한 경력은 1-2년 이상을 반드시 요구하니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중환자실, 응급실 등을 선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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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전글까지 시간 가는줄 모르고 즐겁게 읽었습니다

    나이의 속박에 갇혀지내던 47세 간호사입니다. 선생님의 용기와 결단에 영감을 받았습니다


    19.04.20 05:07:46
  • 안녕하세요? 글 중에 방문간호에 대한 부분이 있네요. 많이 궁금합니다. 다음번에 한번 미국 방문간호에 대한 글을 부탁드려도될까요?

    19.03.28 08:30:19
  • 네...방문 간호에 대해서 더 관심을 기울이겠습니다. 이전 글들도 참고해 주세요~

    19.03.30 00:4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