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두일의 나는간호사
  • 모방(Copying)

  • "지금 있는 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이요,

    지금 생긴 일은 언젠가 있었던 일이라.

    하늘 아래 새 것이 있을 리 없다."

    솔로몬

     

     

    아내는 7살 나이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왔다. 어린 나이에 온 덕분에 영어가 한국어보다 더 편하다. 영어실력이 마냥 부럽다. 하지만 한국어 실력도 상당하다. 처음 만난 사람들은 한국에서 자란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완벽한 이중 언어자다. 10년 전엔 살짝 억양이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었긴 했다. 어떤 한국말이 편한 남자와 함께 살기 시작하더니 이젠 정말 퍼펙트 하다. 그런데 아내의 한국어 실력에 '푸하하' 웃는 때가 있다. 나의 생일 때 손 카드를 써주는데 거기에 쓰인 한국어 실력은 딱 초딩 3년 수준이다.

     

    "여보, 생일 축하헤요. 1년 동안 건강해써요. 또 일 년도 나랑 가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삽시다.“

     

    아니 말은 저렇게 잘하면서 글을 쓰면 우째 10살 아이가 돼버리지?

     

    아내를 통해 입말 실력과 글말 실력은 별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말을 그대로 글로 옮기면 될 터인데 실상 그렇지가 않다.

     

    가만... 남의 일이 아니다!

     

    내가 영어로 글을 쓰면 얼마나 형편이 없을까? 병원에서 하는 차팅(Charting)이 전산화 되면서 대부분 클릭으로 처리가 된다. 그러나 여전히 서술형 차팅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경우(낙상, 환자가 의사의 동의 없이 퇴원하는 경우,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 등), 그리고 다음 번 간호계획 등은 서술형 차팅이다. 내가 기록하는 서술형 차팅을 읽으면서 동료들이 어떻게 생각할 지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입말 영어도 잘 못하는데 글말은 얼마나 더 부족 하겠는가. 미국에서 간호 업무를 제대로 하려면 내공 있는 영어는 당연히 중요한 부분이다. 좀 더 나은 서술형 차팅을 고민하던 어느 날 좋은 방법이 또 올랐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모방(Copying)! 모방이었다.

     

    매니저 바바라에게 물었다.

     

    "난 영 차팅에 자신이 없는데 누가 꼼꼼하게 차팅을 잘하지요? 제가 좀 보고 싶습니다.“

    "메간. 그 친구 차팅이 표준이라 생각하고 훑어 봐.“

    "그래요? 또 다른 사람 한 명만 더 추천해줄래요?“

    "음...엘리자베스도 잘하는 편이지. 20년 넘게 이 부서에서 일했으니까...“

    "오 그래요? 고마워요."

     

    업무를 빨리 끝내는 날이면 그들의 차팅을 살피기 시작했다. 좋은 표현이 나오면 복사를 해서 내 문서에 저장을 했다. 당연히 환자 정보는 모두 지워가면서. 내 환자가 비슷한 상황에 있을 때 그대로 복사 해다가 붙여 넣는다.

              

    모방!

     

    창조는 칭찬을, 모방은 비난을 받아야 할까.

     

    모방하지 않는 인간이 어디에 있을까. 아기가 어릴 때 가족들의 말과 표정을 그대로 따라 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선생님을 따라 하고, 중딩 시절에는 아이돌을, 스포츠 선수를 따라 하지 않는가. 요즘은 어린아이에서부터 어른까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유튜브에 들어가서 전문가의 동영상을 보며 그대로 모방하는 세대이다. 모방은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 보는 게 맞다.

              

    피카소가 16살 때 마드리드에 있는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했다. 거기서 그는 '시녀들'을 보고 정신이 나갔다. 그 날부터 피카소는 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서 매일 매일 이 그림을 그대로 모방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미 그가 20대의 나이에 그림의 거장으로 인정받았지만 76세에도 때때로 그 그림을 따라 그렸다. 그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피카소에게 물었다.

     

    "왜 아직도 다른 사람의 그림을 모방하십니까?“

    "천재성은 나이가 들며 줄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 해야 하지요.“

     

    '이대리 노트’

     

    현대자동차는 독자 모델을 몹시도 만들고 싶어 했다. 1974년, 이충구 대리와 4명의 직원이 함께 이탈리아의 한 디자인 회사로 날라 갔다. 이 대리는 방문한 회사에서 그들이 작업하는 도면, 눈금, 심지어는 사용하는 도구까지, 모든 것을 자신의 수첩에 베꼈다. 너무나 자동차 디자인에 관한 한 백지상태라 중요한 것, 중요하지 않은 것이 구분이 되지 않으니 모든 것을 베낀 것이다. 훗날 그의 노트는 현대 자동차 독자 모델인 포니 제작의 토대가 되었다. 그렇게 태어난 포니의 디자인은 지금 보아도 빼어나다. 

     

    이 외에 모방이 발전의 토대가 되는 예는 엄청나다.

     

    전문가들은 모방을 자신의 분야에서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조언한다.

     

    1909년 포드 자동차의 설립자 헨리 포드는 자동차의 대량생산을 성공했다.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1909년 자동차 한 대 가격 950달러였는데 1916년에는 360달러까지 떨어진다. 불과 7년 만에 1/3가격으로 떨어진 것이다. 요즘 신형 핸드폰 가격이 100만원을 넘는데 똑같은 제품이 35만원까지 떨어진다고 생각해보면 그 당시 소비자들의 구매충동을 쉽게 이해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포드는 어떻게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도입할 생각을 했을까? 포드 임원들은 도축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도축업자들은 작업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컨베이어 벨트를 만들어 놓고 수동으로 돌렸다. 컨베이어 벨트 주위에 선 일꾼들은 자신들에게 소가 오면 자기가 맡은 부분만을 떼어냈다. 등심 뜨는 사람은 등심만을, 꼬리를 자르는 사람은 꼬리만을, 안심을 드러내는 사람은 안심 부분만을 작업했다. 철저히 분업화 한 것이다. 이런 분업화로 도축작업 효율은 극대화 되었다. 포드는 이 방식에 자동화를 덧칠했을 뿐이었다.

     

    이렇게 전혀 다른 산업분야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그대로 가져올 수 있다.   

     

    한국인으로서 30대 중반에 미국 병원에 취업해서 살아남은 비결 중 하나가 미국인을 '닥치고 따라 하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들이 하는 말의 습관(특별히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은어와 약어들), 몸짓언어, 업무를 대하는 태도, 등등...... 지면으로는 이루 다 나열할 수 없겠다.

     

    저작권 보호 인식이 보편화 되었고 다른 사람의 지적 자산을 허락 없이 도용하는 것이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지는 세상이다. 그래서 모방도 도매 급으로 부정적으로 비추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옛 지혜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있는 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이요, 지금 생긴 일은 언젠가 있었던 일이라. 하늘 아래 새 것이 있을 리 없다." 차팅 베꼈다고 동료들이 저작권을 요구하는 것도 아닌데 신나게 베껴보자. 언젠가는 그들의 것이 나의 것이 되고 나의 차팅이 더 낫게 되는 때가 오겠지......

     

    마지막으로 서술형 차팅의 예를 분석해보자.

     

    서술형 차팅의 예 1 (편의상 각 문장을 번호로 붙이고 줄을 구분했다.)

     

    1. 93 year old with multiple medical problems including COPD, Sleep apnea, A-Fib with recent insertion of pacemaker in October 2018. 

     

    2. Home health following for wound care and instruction to disease process and medication management. 

     

    3. Patient developed weight gain of 9 pounds on 11/16/18 and Dr. Kill was notified and patient was initiated on increased diuretic. 

     

    4. He was also started on antibiotics for pneumonia per PCP. 

     

    5. On 11/19/18 patient was noted to have increased SOB and weakness Dr. Kill was notified and he ordered patient to go to ER at SNMH.

     

    1. 환자나이 + with multiple medical problems including + 진단명

    첫 문장에서 환자의 진단명을 밝히는 순서를 눈여겨보자. 나열 순서를 통째로 익히면 그대로 사용하기 쉽다. '닥치고 따라 하기!'

     

    2. Home health following

    서술형 진술은 정보전달은 확실히, 그러나 최대한 축약해야 하기 때문에 문법을 엄격하게 따르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까 관사 붙이기, 주어 동사 따지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어 두 번째 문장에서도 Home health following이라고 했지 home health followed라고 하지 않았다.

     

    3. "...initiated on increased diuretic"

    세 번째 문장에서 환자가 이뇨제를 시작했다를 수동태 문장으로 썼는데 많이 쓰이는 문장이다.

     

    4.  per PCP.

    per이라는 단어는 많이 쓰인다. "according to"와 같은 뜻이다. 알파벳 갯수가 11개쓰는 것 보다 세 개 쓰는 게 쉽지 않은가? 그래서 차팅에서는 per을 단연코 더 많이 사용한다. PCP는 primary care physician의 약자이다. 미국인은 자신의 주치의를 가진다. 감기 걸리면 내과 의사에게 가고, 비뇨기 문제가 있으면 바로 비뇨기과 의사에게 가고 그러지 않고 일단 주치의를 통하여 다른 의료진에게 가는 시스템이다.

     

    5. SNMH

    간호사들이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는 수백 개의 의료 약어를 배우고 졸업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취업을 하면 그게 전부가 아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취업한 병원이 쓰는 그들만의 약어도 빨리 익혀줘야 한다. 엄청난 약어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기대하시라^^ SNMH은 우리병원 약자다. Sierra Nevada Memorial Hosp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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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선생님 시간이 많이지났지만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19.02.12 01:23:12
  •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9.02.14 12:37:25
  • 감사합니다!

    19.02.06 21:49:06
  • My pleasure.

    19.02.14 12:37:50
  • 익명

    선생님의 글에 공감하고 갑니다^^ 어떤 것이든 모방은 떼어놓을수 없는 관계인것같아요
    심지어 취미로 피아노를 배워도 모방이 필요한 것처럼요^^

    19.02.03 11:55:08
  • 네. 맞습니다.

    19.02.14 12:3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