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두일의 나는간호사
천직(Ca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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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노동은 삶을 질식시킨다”
알베르 카뮈
출근을 하니 병원에서 가까운 로마린다 대학 간호학과 학생들이 병원 실습을 나왔다. 인계를 위해 밤번 간호사들과 낮번 간호사들이 엉켜 있는 것만 해도 복잡한데 학생들까지 더해져서 복도가 시골 5일장 선 것 같았다. 밤번 간호사 쉐리와 인계를 막 시작했는데 한 남학생이 다가왔다. 머리를 2cm 정도 길이로 아주 짧게 깎고 체구가 코미디언 김병만처럼 땅땅한 학생이었다. 그의 눈은 '난 정말 많이 배우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듯 빛났다.
"방해해서 죄송해요. 당신이 에녹입니까? 간호 학생인데 오늘 당신과 함께 환자를 보기로 되었습니다.“
서둘러 오늘 하루가 어떻게 돌아갈 건지 말했다.
"얘기 들었어요. 나 바쁠 때는 많이 못 알려 드립니다. 아침 약 투약 시간이 끝나면 시간이 좀 날 거니까 그때까지 이해하기 바랍니다.“ [1]
"걱정 마세요. 옆에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니까요.“
낮 근무는 어마어마한 업무량에 내 자신이 홍수 날 불어난 물에 떠내려가는 듯이 업무에 쓸려가는 느낌을 받곤 한다. 며칠 전에는 함께 일하던 리즈가 해도 해도 줄지 않는 자신의 업무량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마음 착한 책임간호사 몰리가 달래서 시프트가 잘 마무리되도록 도와주었다. 나도 종종 주저앉아 울고 싶다. 오늘처럼 간호 학생까지 하나 따라붙으면 솔직히 귀찮다. 주어진 시간에 서둘러 일 처리를 끝내야 하는데 혹하나 생긴 셈이다. 한편으로는 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고 시간이 여유가 있다면야 좋은 선생 노릇 해줄 텐데...
카를로스는 묵묵히 나의 업무 인계, 환자 사정 등의 모든 간호업무를 지켜보면서 자신의 수첩에 열심히 메모를 했다. 아침 약 투약이 다 끝나고 숨을 돌리며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10시 5분. 이제 좀 여유가 생겼다. 투명인간 취급한 카를로스에게 미안하여 말을 건넸다.
"엄청 바쁘죠?“
"네...정말 바쁘긴 하네요.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그냥 하는 거죠 뭐...하다 보면 다 돼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누가 있나요“
20대 초반에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눈을 가진 학생들을 보면 더 관심이 간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 지금 다니는 학교 학비가 너무 비싸지 않아요? 좀 싼 학교를 선택하지 그랬어요.“
"싼 학교들은 경쟁이 심해서 들어가기 힘들어서요. 마냥 기다리기도 그렇고 해서 학비 융자받아서 시작했어요."
미국의 거의 대부분의 도시에 있는 Community College는 학비가 다른 사립대학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예를 들어 지역 전문대학의 학점당 학비가 46불이면 같은 지역 사립 간호대학 학비는 깡패다. 200불, 300불 이런 식이다.[2] 학비가 비싼 사립대학 간호학과를 다니는 게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다.
"학교 졸업하면 학비 융자 갚느라 또 고생하겠군요."
"그러게요. 어쩔 수 없지요.“
"부모님이 도와주지 않는가 봐요?“
"네.“
"그럼 생활비는?“
"틈틈이 제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써요. 부모님에게 의지하는 것이 부담스럽거든요.“
카를로스가 존경스러워 보였다.
내가 저 나이 때는 뭐 하고 있었지? 말도 안 되게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는데. 미국은 나이 문화가 거의 없기에 상대방에게 나이를 묻는 일이 드물다. 유시민 작가는 그의 강연에서 한국의 나이 문화는 한국인에게 불행한 일이라고까지 언급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도 독일에서 나이 문화의 문제점을 몸으로 겪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특한 그의 태도가 나이를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제 몇 살이에요?“
"21살입니다.“
사춘기를 참으로 거칠게 보냈다. 문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간이었다. 내가 가장 괴로웠고 내 부모님이, 또 주위의 사람들이 나 때문에 괴로워했다. 중2 때부터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강원도 원주 근교의 한 시골에서 농사를 시작하신 지 2년여밖에 안 된 때였다. 가난했다. 친구들이 아디다스(adidas)를 신을 때 난 아디도스(adidos)를 신어야 했다. 친구들이 나이키(nike) 잠바를 입을 때 난 나이스(nice) 잠바를 입어야 했다. 짝퉁으로 진품을 따라가는 인생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나의 꿈은 공장에 들어가 돈 버는 것이 돼버렸다. 게다가 공부도 싫었다. 아니 공부를 해야 하는 동기부여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가출하기 시작했다. 봄바람이 살살 불면 집을 나갔고 교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불편하면 아무 때나 사라졌다. 중3 학생이 교실에서 선생님이랑 삿대질하고 싸우다 사라졌다. 그래도 부모님은 나를 다시 학교로 돌려보냈다. 학교 교육은 반드시 시켜야 한다는 것이 부모님의 신념이었다. 가끔 그때 나의 의견을 인정해 주시고 공장에 취업하게 해 주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어둡고 먼지 많은 공장에서 혹사당하다 세상의 뜨거운 맛을 일찍 보고 부모님의 지원 아래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가까스로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한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부모님과 나는 학교를 더 나은 곳으로 보내면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할 수 있을지 않을까 생각했다. 몇 개월 만에 학교의 신선함이 사라졌다. 다시 학교 주위를 겉돌기 시작했다. 결국 2학년 여름방학을 며칠 앞두고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
그럼에도 부모님의 교육신념은 꺾이지 않았다.
더운 여름날이었다. 방바닥에 배를 깔고 게으름 피우고 있는데 밭에서 돌아오는 엄마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태양에 검게 탄 얼굴에 땀이 줄줄 흘러 눈을 제대로 못 뜨고 있었다.
"뭐하러 그렇게 일하요...딴 일해서 돈을 벌든가.“
"이놈아. 세상의 불이 다 뜨겁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딨나?“
철없는 자식을 쥑일 수도 없고 얼마나 답답했을까...
수건으로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면서 말씀하셨다.
"야야...니 간호사 한 번 안 해 볼래?“
어릴 때 난 꿈이 없었다. 요즘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많은 것 같은데 난 정말 뭘 하고 싶은 게 없었다. 불행했던 것은 '너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물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 내게 엄마가 가장 현실적인 제안을 한 것이었다.
내가 간호사가 된다고? 내가?
아무 소리 없는 나에게 엄마가 설득을 이어갔다.
"니 삼촌도 나이 30에 간호사가 됐데이. 니 이모부도 남자인데도 간호사가 되서 중동 가서 돈도 벌어오고 직장생활이 안정적이잖나. 먹고는 살아야 할 거 아이나. 니도 한번 해봐라.“
곧 50이 될 나이에 친구들이 모이면 사는 이야기를 한다. 한국은 50대 초반에도 퇴직을 하는 상황이다 보니 퇴직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미국은 나이 문화가 없다 보니 70살 먹어도 병동 간호사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나의 말에 친구들이 부럽다며 한마디씩 한다.
"신의 한 수였어.“
또 다른 놈이 거든다.
"니가 간호사 된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어.“
나의 고개가 절로 끄떡여진다..
"동감! 우리 엄니 덕분이지 뭐. 하하하.“
엄마의 바람대로 난 고졸 검정고시를 거쳐 간호전문대학에 들어갔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직장인의 80%가 자신이 하는 일은 천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간호대학을 들어갔을 때도, 졸업을 할 때도,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지 10년이 지났을 때도 간호사란 직업이 나에게 맞지 않는 옷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부도 대충 했고 일도 대충 했다.
큰 실수였다.
좋은 성적을 받아보지도, 직장에서 인정을 제대로 받지도 못한 인생이었다. 천직을 막연히 기다렸다. 그러나 나이 50을 바라보는 때가 되니 천직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적성에 맞아서 자기 직업을 선택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에이미 워제스니스키는 개인이 자신의 직업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세 용어로 직업을 규정한다.[3] 첫번째, 생업(Job)이다. 생계를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일하는 이유다. 삶을 만족시키는 것은 일이 아니라 취미생활, 혹은 직장 밖의 인간관계에서 온다. 두 번째는 전문직(career)이다. 승진과 사회적 지위가 일을 하는 주요한 이유이다. 세 번째는 천직(calling)으로 일 자체에 혼신을 다하며 최선을 다한 것 자체로 만족하는 직업이다. 영어로 천직은 '부르심'인데 용어 자체가 숭고한 냄새가 폴폴 난다.
일에 자기의 혼을 불어넣는 것을 천직이라 정의한다면 평범한 직업도 천직이 될 수 있으리라. 천직은 내 재능과 상관없이, 나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내가 받은 교육과 상관없이, 내가 기다리던 것과는 상관없는, 그 어떤 직업이 나의 천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해보지도 않은 일이 천직일 수 없고, 이후에 뒤돌아보니 내가 해 오던 일이 천직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서재에 '왜 일하는가’는 제목이 붙은 얇은 책이 있다. 직장 일이 나태해지면 가끔 꺼내 읽는 책이다. 쉽게 읽히는 책이다. 그러나 가슴에 불을 놓는다. 책을 쓴 사람은 한국으로 치면 정주영, 이병철 정도 되는 일본의 존경받는 3대 기업인, 이나모리 가즈오이다. 이나모리는 일본의 이름 없는 한 지방 대학을 졸업한다. 입사시험에 떨어지고 있을 때 담당 교수의 추천으로 가까스로 취업에 성공한다. 취업한 회사는 고압초자를 생산하는 쇼후공업이었다. 입사할 당시 쇼후공업은 문을 언제 닫을지 모를 정도로 망해가는 회사였다. 직원들도, 그 회사가 있는 지역사회도 회사가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6개월 채 되지 않은 때에 입사 동기들이 모두 떠났다. 이나모리도 회사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좀 더 안정적 직업으로 보이는 자위대 간부후보생 학교에 지원서를 낸다. 가족에게 지원에 필요한 호적초본을 보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입사한 지 6개월 채 안 되어 퇴사하려는 동생의 태도에 불쾌했던 형은 일부러 호적초본을 보내지 않는다. 그렇게 퇴사하려던 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그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지금 하는 일에 혼을 쏟아 일해보자 결심한다. 자신이 연구하는 파인세라믹 분야에서 더 나은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밤낮으로 몰입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포스테라이트를 만드는데 성공한다. 그의 이 성공이 있기 전 자신의 일에 대한 그의 고백이 내 귀를 때린다.
"일에 몰두하면서...의구심과 방황도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정말 거짓말처럼 일이 너무너무 재미있어졌다."
그는 힘주어 말한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때, 싫은 일이라도 그 일에 혼신을 다해보라. 그러다 보면 그 일이 당신의 천직이 될 거라고.
카를로스도 나와 비슷한 나이에 간호사의 길로 들어섰다. 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빛나는 눈빛을 보니 별걱정을 안 해도 되겠다 싶다. 꾸준히 성장하여 큰 나무 같은 직업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바빠도 그에게 좀 더 많은 팁과 정보를 줘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를로스. 611호 환자에게 이뇨제 Lasix를 투여했는데 이 이뇨제를 투여할 때 확인해야 할 점이 뭐가 있을까요?"
[1] 간호 학생과의 대화를 존대어로 썼다. 간호사와 간호 학생의 관계는 상하 관계가 아니다. 미국이 나이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간호 학생들의 태도에서 당당함이 배어 나온다. 간호사들이 학생들을 동생 다루듯 하는 것을 아직 보지 못했다.
[2] 2017년 현재 지역 전문대 학점당 학비는 $46불이다. 물론, 영주권자와 시민권자가 학교 소재 주에 거주를 1년 이상했을 때에 해당된다. 사립대학의 학비는 천차만별이다. 이야기에 언급된 남캘리포니아 로마린다 사립대학은 2018년 현재 간호학과생 학비는 학점 당 $640 정도 한다.
[3] 인터넷 출처 https://www.forbes.com/sites/melodywilding/2018/04/23/do-you-have-a-job-career-or-calling-the-difference-matters/#47fc5a2a63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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