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두일의 나는간호사
공감(Empat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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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미국 생활에 단비 같은 시간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일주일에 한 번씩 가까이 지내는 한인 가족들과 함께 모여 같이 수다도 떨고 음식을 나누는 시간이다. 모임에 오는 각 집에서 돌아가며 모임을 갖는데 지난주에는 우리 집에서 모였다. 그때 아래의 유튜브 동영상을 함께 시청하였다. 며칠 전에 먼저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아 함께 나누고 싶었다. 이 비디오에 나오는 이야기는 이렇다.
중국인 여자아이를 입양한 미국인 한 엄마가 그 아이가 12살이 되었을 때 깜짝 크리스마스 선물을 해주기로 결심한다. 그 아이의 출생지와 가족관계 등, 뿌리를 조사해서 아이에게 알려주는 선물이었다. 엄마는 인터넷에서 자신이 입양한 아이에 대한 정보를 찾던 중에 깜짝 놀랄 사진을 발견한다. 자신의 딸이 입양 전에 보모의 무릎 위에 앉아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딸과 똑같이 생긴 여자아이와 함께였다. 자신의 딸이 쌍둥이였던 것이다. 그 엄마는 또 다른 쌍둥이가 어디에 있는지 찾기 시작했고 그 아이가 미국의 또 다른 가정에 입양되어 자라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 연락을 취하여 온라인으로 만남을 이루었고 드디어 방송을 통하여 이 두 쌍둥이가 실제로 다시 만나는 감동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이 감동적인 프로그램을 함께 보면서 친구들의 반응을 주시해 보았다.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훌쩍 훌쩍 우는 것이었다.
공감(Empathy)!
네이버 사전에는 공감(Empathy)을 이렇게 정의한다.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
친구들은 어느 누구도 고아가 되어 본 적도, 고아를 입양해 본 적이 없지만, 그 쌍둥이 아이들이 처음으로 만나서 서로를 쳐다보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며 그 아이들의 감정을 그대로 경험하며 눈물을 흘린 것이다.
인간이 가진 신통방통한 능력이 아닐까!
몇 년 전에 내 환자였던 한 남자가 생각이 난다. 체중이 많이 나가는 비교적 젊은 나이인 백인 남자였는데 성인병에 걸려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다. 초겨울 입새여서 꽤 추운 날이었다. 그 환자는 햇살이 잘 드는 창가에 누워 있었고 그의 아내는 침대 끝쪽에 서 있었다. 그의 아내는 두 살 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를 안고 양쪽에 유치원생 정도 되는 딸과, 그리고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그렇게 세 아이가 함께 서 있었다. 엄마와 아이 모두 잘 씻지 않은 듯한 모습에 한 눈에 보아도 가난한 가정으로 보였다. 특이한 것은 그 아이들의 엄마가 말도 없이 병상에 누워있는 남편만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을 눈치챘다. 어색한 침묵의 커튼을 조심스레 열어젖혔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제가 도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환자가 답했다.
"우리 가족은 OO에 삽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차에 기름이 바닥이 났대요.“
미국 병원에는 이 가족처럼 정말 가난하여 정부의 생활보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도 입원한다. 노숙자는 말할 것도 없고... 병원 측에서는 그들을 위한 다양한 도움들을 준비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이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갈 때 택시비를 지원해서 보내기도 하고, 지역 비영리단체에 연결해주기도 한다.
이런 경우가 드문 경우가 아니라서 해결책도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사회사업가에게 연락하면 얼른 와서 문제를 풀어 줄 수 있으리라.
"제가 사회사업가에게 얘기해 보겠습니다. 도와 드릴 방법이 있을 거예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환자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이미 이전 근무 간호사가 연락을 했대요. 사회사업가도 더 이상 우릴 도울 수 없다고 하는군요.“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지만, 이 가족의 사정을 사회사업가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문득 지갑에 있던 지폐 몇 장이 생각이 났다. 환자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마시구요...제가 조금의 돈이 있는데 당신의 아내와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기에 넉넉할 것 같아서 그러는데 받으시겠어요?"
남을 돕는 것도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말고 해야 한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기름비를 개인적으로 보태겠다고 제안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환자는 OK 라며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지갑을 열어보니 20불짜리 지폐 하나와 10불짜리 지폐 하나 그렇게 30불이 있었다. 환자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내에게 30불을 건넸다. 그의 아내가 안도하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환자가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 내어 엉엉 울기 시작하였다. 그 환자는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
"고마워요. 퇴원하면 그 돈 보내드릴게요.“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다. 그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멀리 사시는데 돈을 보내려면 번거롭기도 하구요.“
그 가족에게 돈을 건넨 가장 큰 이유가 뭘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의 형편을 머릿속으로 경험했던 거 같다. 아내는 아이 셋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남편은 병원 침대에 누워있고 기름값도 없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그 환자는 돈 몇 푼이 없어서 아내와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에 얼마나 답답할까?
그런 마음이 든 것이다...
한 번도 그 정도로 가난하게 살아보지 않았지만 그들의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 경험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공감(Empathy)와 동정(Sympathy)을 혼돈한다. 동정(Sympathy)은 다른 사람이 겪는 아픔이나 어려운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정도다. 그러나 공감(Empathy)의 의미는 동정(Sympathy)의 의미를 포함할 뿐만이 아니라 훨씬 더 크다. 공감(Empathy)은 다른 사람의 슬픔, 고통과 같은 부정적 상황뿐 아니라 기쁨, 성취감을 자신의 것처럼 마음으로 똑같이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 의료계에서는 이미 의료진의 공감(Empathy) 능력이 환자 질병의 회복과 병원 만족도를 높이는 중요한 원인이라고 인식하고 의료진의 공감(Empathy)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Clinical empathy라는 단어 조합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직역을 하자면 '임상 공감' 정도 되겠는데 좀 어색하지 않는가? 어쨌든 구글에 공감과 건강에 대한 검색을 해보면 그 자료량이 엄청나다. 또한 공감(Empathy)이 삶의 행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는 많은 뇌 과학자들이 사람의 공감(Empathy) 능력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해왔다. 과학자들은 사람이 공감(Empathy)할 때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되고 공감(Empathy) 회로가 있으며 지금까지 알려진 회로만 1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훈련에 따라 공감(Empathy) 회로가 더욱 활성화 된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공감(Empathy)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도 적절한 훈련이 있으면 공감(Empathy)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환자와의 사이에 있었던 일 이후로 나는 지갑에 20불짜리 지폐를 두 세장 가지고 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곤란한 상황에 있는 환자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고 싶지가 않다. 나의 작은 도움으로 함께 행복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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